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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헌재로 간 ‘낙태죄’ 알아야 할 4가지

행복 한 삶 2018. 5. 25. 07:38

다시 헌재로 간 ‘낙태죄’ 알아야 할 4가지

등록 :2018-05-24 18:45수정 :2018-05-24 22:41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6120.html?_fr=st1#csidxe7a8e0ced38e64d997c1afc3932865f

 

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이나
사회경제적 사유 임신중절 불법
2010년 약 17만건…처벌 극소수
OECD 25개국 당사자 요청으로
일정 기간내 임신중절 시술 허용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여성·의료·법률 단체 등으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임신중절 처벌 조항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여성·의료·법률 단체 등으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임신중절 처벌 조항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나는 아기 자판기가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는 이러한 문구가 쓰인 ‘인간자판기’ 가 보였다. 임신중절(낙태) 처벌 조항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헌재의 공개변론이 열리기 2시간 전이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준비한 20대 여성은 2016년부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해 온 익명의 여성 모임 비웨이브(BWAVE) 회원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가 인구 정책을 위해 개인의 몸을 수단으로 삼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헌재 정문 앞에선 여성·의료·법률 단체 등으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 100여명이 임신중절 처벌 조항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당사자 임신중지 결정은 처벌하면서 우생학적 목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한 법은 국가가 인구관리 계획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 도구로 삼은 것”이라며 “낙태죄를 존치시키면서 국가는 장애·질병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불리하고 열악한 조건에 있는 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방기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자리한 맞은 편에는 ‘헌법 정신은 모든 생명의 보호입니다’ ‘낙태는 어린 아기 차별입니다’ 라는 구호가 쓰인 팻말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원이라고 밝힌 박민경(40)씨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임신중절을 하면 여성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또 낙태가 허용되면 남성들한테 유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8월 헌재는 합헌과 위헌 의견간 팽팽한 대립(4:4) 끝에 임신중절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6년 뒤, 헌재가 다시 위헌 여부를 살피고 있는 임신중절 처벌 조항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떤 이유로 임신중절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24일 오전 헌재 정문 앞에서 2016년 결성돼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해 온 익명의 여성 모임 비웨이브(BWAVE) 회원이 아기자판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4일 오전 헌재 정문 앞에서 2016년 결성돼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해 온 익명의 여성 모임 비웨이브(BWAVE) 회원이 아기자판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① 임신중절 처벌 조항은 어떻게 돼 있나?

현행 형법은 모든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임신중절을 한 의료진은 2년 이하의 징역,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을 통해 임신 24주 이내에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 건강 등 사유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본인·배우자 동의를 받아 임신중절을 허용한다. 여성이 임신중절을 하려면 상대 남성의 동의를 구해야하지만, 처벌 과정에선 남성 책임이 빠져있는 구조이다.

② 임신중절 얼마나, 왜 하나?

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실태조사가 마지막으로 시행된 건 8년 전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낸 보고서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를 보면 2010년 임신중절 추정 건수는 16만8738건, 임신중절률(만 15~44살 가임기 여성 1000명당 임신중절 건수)은 15.8%였다. 전체 임신중절건수 가운데 57.1%는 결혼을 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학력별로 보면 고등학교 졸업 이하, 매달 가구 소득별로 보면 100~200만원 이하 집단에서 임신중절률이 가장 높았다. 임신중절 사유로 가장 많이 언급된 건 원치 않는 임신(35%)이었다. 경제 사정으로 인한 양육 어려움(16.4%), 태아의 건강문제(15.9%)도 임신중절 이유였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임신중절을 하는 경우가 다수이지만, 이러한 경우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셈이다.

③ 처벌은 어느 정도?

현실에서 임신중절 대부분이 불법이지만, 기소돼 처벌받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대검찰청 ‘2014 범죄분석’ 자료를 보면 낙태죄 발생 건수는 59건, 기소된 경우는 15건이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3월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임신중절 과정에서 배우자 동의를 필요로 한 조건으로 인해 남성의 협박·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신중절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시술이 이어지는 상황으로 인해 여성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간호사·의사·약사 등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보건의료인’ 525명은 23일 성명을 내어 “임신중절 처벌로 인해 한국 여성들은 표준진료 지침에 따른 시술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에선 부작용이 적은 약물적 시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고발을 두려워한 병원은 여성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퇴원시키기도 하며, 의무기록도 남길 수 없어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④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나?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태아의 생명 보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한국과 견줘 완화된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아일랜드 등 10개국을 제외한 독일·이탈리아·벨기에·그리스·캐나다 등 20여개국에서는 사회경제적 사유 뿐 아니라 여성 본인 요청으로도 임신 10주~20주 등 일정한 기간 내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 임신중절을 하려면 전문가 2인 승인 및 배우자 동의가 필요하지만, 한국과 다르게 ‘경제적 사유’로 인한 시술이 허용된다.

임신중절을 폭넓게 허용하는 여러 국가들은 여성들의 건강권을 위한 의학·사회적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임신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네덜란드는 시술 전후 상담을 의무화했다. 시술 전엔 여성의 책임있는 결정을 돕기 위한 신체적·정신적 상담을, 시술 이후엔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자료: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4),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국회입법조사처·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