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육조지…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육조지…
원본 바로가기 링크 : https://youtu.be/VS03V1x-Pfo
유신헌법이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양담배를 피워 문 다방에서는 “양담배 피운다”고,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으면 “머리카락이 길어 풍기문란”이라며 경찰에 붙잡힐까 사람들은 전전긍긍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행위가 어쩌면 범법(犯法)이 될지 몰라 늘 속앓이를 하던 197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이었다.
그 무렵 작가 정을병(鄭乙炳))은 옥중 체험을 정리했다. 억눌린 사람들이 감옥에 처박히면 어떤 경우를 당하는지 잘 묘사했다. 그는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소설 ‘육조지’를 발표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냉소는 압권이었다. 조지는 자와 조짐을 당하는 사람의 물리적, 심리적 상호 관계가 잘 그려져 있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육조지란 이런 내용이다.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얘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도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담긴 조건에서 옥에 들어와 앉은 죄수는 가족이나 친지가 넣어주는 사식(私食)에 목마르다. 닥치는 대로 먹어댈 수밖에 없다. 간수는 늘 죄수를 세기에 바쁘다. 한 사람이라도 빠뜨릴 수 없어 늘 점검에 바쁘다. 형사는 고함과 함께 혐의자를 패기 일쑤다. 바쁜 와중에 이리저리 신문할 틈도 없다. 빨리 패서라도 자백을 받으면 그만이다.
검사는 구치소에 갇힌 죄수를 불러댄다. 이리저리 죄목을 얽어 형을 확정하면 자신의 업무성적표는 괜찮게 그려진다. 판사는 어떨까. 법 절차는 늘 까다롭고 판결문은 항상 어렵다. 혐의자가 어리둥절한 틈에 그에 대한 판결을 늘 미룬다. 엘리트 판사가 된다는 것과 재소자 인권은 큰 관련이 없으니까.
'조진다’는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호되게 남을 때린다’다. 점잖은 해석이다. 실제로는 상대를 극한으로 몰아갈 정도의 그악스러움을 의미한다. 속되게 사용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푸념도 하릴없다. 그 역시 여의도에서 늘 반복적으로 펼쳐지던 살풍경(殺風景)의 하나였음을 우리는 분명히 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의도는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뱉어 조지는’ 비속(卑俗)함의 생산 공장이다. 이제 누군가는 어느 누군가를 늘 조지고 때려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이니, 정을병의 ‘육조지’는 멀어도 한참 먼 과거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