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황교안의 백선엽 예방, 국가 정체성 부인하는 행위”
광복회 “황교안의 백선엽 예방, 국가 정체성 부인하는 행위”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161836001&code=910302#csidxc582d716bd7aa5fac114b50ebca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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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가 지난 6월10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6·25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을 예방,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회는 1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최근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을 예방한 것을 두고 “국가 정체성을 부인하는 행위”라며 황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광복회는 이날 김원웅 광복회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백 전 대장이 과거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점 등을 거론하며 황 대표를 향해 “항일 독립정신을 외면하는 것은 반역이다. 황 대표는 이런 몰역사적인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백 전 대장은 6·25전쟁 때 1사단장 등을 지내며 활약했다. 그러나 그는 일제강점기 때 항일인사 토벌에 나선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2년 반 동안 복무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백 전 대장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광복회는 “백선엽은 일제의 독립군 토벌에 가장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헌신한 자”라며 “윤봉길 의사가 처단한 일본군대장의 이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한 철저한 토착왜구로 한번도 일제 패망 전의 행위에 대해 참회한 바도 없다”고 했다.
광복회는 “가장 악질적이고, 가장 철저한 친일파인 간도특설대 출신이 영웅대접을 받는 나라에서, 그들의 총칼에 희생되신 독립투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며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보훈의 달에 황 대표의 백선엽 예방은 국가정체성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했다.
황 대표는 지난 10일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백 전 대장을 예방한 바 있다.
경향의 눈
1962년 5월10일 이희호는 정치인 김대중과 결혼했다. 결혼식은 조향록 목사(맨 뒷줄 신랑 신부 사이)의 주례로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있던 외삼촌 이원순의 저택에서 올렸다. 대청마루에서 혼례를 마친 뒤 정원에서 찍은 양가 가족 사진이 남아 있다. 앞줄 신랑 왼쪽에 앉은 이가 신부의 아버지 이용기, 신부 오른쪽에 앉은 이가 큰오빠 이강호다. 둘째 줄 맨 왼쪽에 선 이는 신랑의 비서 조길환, 그 옆 넥타이 맨 이가 신랑의 남동생 김대의이고, 맨 뒷줄 오른쪽 끝이 막내 동생 김대현이다. 사진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장충단공원 유세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무기수 김대중, 어떤 고문과 협박에도 신념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에게도 사랑하는 아내가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아들이 있었다. 군부독재가 시퍼렇게 날서 있던, 감옥보다 더 감옥같은 세상 속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온 남자에겐 가족들이 걱정스럽고 아팠다. 남편이기에, 아버지이기에 어쩔수 없이 감옥까지 따라온 일상적인 걱정들, 그래서 남자는 그 걱정의 마음들을 편지를 통해 세상 속 가족들에게 전하려 한다.
정권의 감시와 핍박은 날로 극심해서, 때론 편지지가 없어 껌 종이에, 연필이 없어 못으로 꾹꾹 자국을 남겨 가며 몰래 전달하던 편지에는 그래서 그의 정치적 신념만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걱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제 중학생인 아들이 공부는 잘 하는지, TV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아비는 늘 걱정이었고 그래서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과 아들을 향한 충고들을 고스란히 편지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가장을 감옥으로 보내고 남편 없이, 아버지 없이 살아야 했을 가족들에게는 그 편지 몇줄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 만으로도, 그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었으리라.
프랑스의 사상가 로제 가로디는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고 했다. 시대의 어둠을 헤쳐나가는 혁명은 바로 사랑에서 시작된다. 비록 가족과 떨어져 옥중에 있지만, 그로 인해 아버지 없이 살아가고, 아버지 없이 공부해야 하는 중학생 아들에게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하고 싶은 아비의 마음처럼 말이다.
지난해 3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지윤 기자

1960년대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희호 여사 가족이 고궁 나들이를 하고 있다.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나선 김대중 후보와 이희호 여사가 시민들에 둘러싸여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게 물컵을 건네는 이희호 여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희호 여사가 11일 펴낸 자서전 <동행>의 표지.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피플’지에 실린 사진으로, 이 여사는 “남편이 이 사진을 증거로 평소 가사를 많이 도왔다고 주장하곤 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5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희호 여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8년 김 대통령 취임 이후 ‘퍼스트레이디’로서도 역대 어느 ‘영부인’들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면모를 선보였다.

지난해 3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에서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국장(왼쪽)이 이희호 여사에게 지난 2010년 이 여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선물하고 있다.가운데는 유시춘 작가.정지윤기자

지난해 3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 거실에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이 놓여 있다. 정지윤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며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