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서울 인구
10만9372명. 600년 전 조선이 처음 집계한 서울의 인구다. <세종실록>은 ‘경성 5부의 가구는 1만6921호, 인구는 10만3328명이고, 성 밖 10리의 지역은 1601가구에 6044명이었다’(1428년 윤4월8일조)고 적었다. 도성 안 5부와 성 밖 10리 지역의 인구를 별도로 집계한 게 눈에 띈다. 한양은 도성 안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불린 도성 밖 10리 이내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조선 중기까지 10만명 선이었던 서울 인구는 18세기 들어 20만명 수준에 도달한다.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이 몰렸다. 성저십리가 주택지로 본격 개발된 것도 이즈음이다. 청장관 이덕무는 ‘거리의 늘어선 가게에는 온갖 상품이 산처럼 쌓였다’(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고 읊었다. 한양은 ‘문명의 숲’이었다. 사대부들은 도시의 고급문화를 동경하며 서울로 향했다. 다산 정약용이 “벼슬길이 끊어져도 서울에 붙어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말라”고 자식을 다그쳤던 시기였다.
조선이 망한 1910년 서울 인구는 23만8499명이었다(<조선총독부통계연보>). 일제강점 이후 서울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일본의 토지침탈로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했다. 해방 직전에는 100만명에 육박했다. 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울이 북적댔다. 1960~1970년 사이 늘어난 서울 인구는 300만명이나 됐다. 매년 30만명의 서울시민이 탄생했다. 80년대 이후에는 수도권이 형성되면서 유입 인구가 경기·인천으로 분산됐다. 그래도 서울 인구는 계속 늘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인구가 1004만9607명으로 집계됐다. 1992년 1097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서울 인구는 내리막길이다. 조만간 ‘1천만 서울’도 사라진다. 메트로폴리스나 메갈로폴리스 등 거대도시를 자랑하던 시대는 지났다. 규모가 아니라 생활의 질이 중요하다. 안전하고 쾌적한 삶이 보장되는 도시여야 한다. 조선시대 내내 한양에는 백성의 1%인 10만~20만명이 살았다. 지금은 국민 20%가 서울 시민이다. 수도권에는 40%가 산다. 국토 균형발전과 삶의 질을 위해 인구분산이 절실하다. 줄고 있다지만,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