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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조선일보에 바란다

행복 한 삶 2020. 3. 7. 13:41



창간 100주년, 조선일보에 바란다 
[기자수첩] 신뢰는 높이고 불신은 줄이는 조선일보 됐으면  

10대의 0.2%만이 매일 종이신문을 보는 시대다. 조선일보보다는 인사이트나 디스패치가 더 가까운 시대다. 앞으로의 미디어 이용자들은 조선일보를 모른다. 위기는 ‘악플’보다 ‘무플’에서 찾아온다. 아무도 조선일보를 비판하지 않을 때, 그 순간이 조선일보가 망하는 날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희망이나 기대가 없다면 비판도 하지 않는다.

ABC협회 부수인증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국내에서 유료부수 100만 부가 넘는 유일한 신문인데, 조선일보 내에서도 이 수치가 정확하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원들은 사장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매년 유료부수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해 들었다. 지금은 사장이 질책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신문을 안 보기 때문이다. 부실부수를 걷어내고 유료부수를 현실화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언제까지 주인 없는 지면을 발행하는데 돈을 쓸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종이신문 전성기를 누렸던 방상훈 사장으로선 어려운 선택이다. 그래서 3월 조선일보 주주총회가 주목된다. 조선일보 기자들 사이에선 전부터 ‘세대교체’ 시점이 창간 100주년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1993년부터 27년째 사장이다. 이제는 물러날 때다. 회사를 남에게 줄 것 같진 않다. 장남인 방준오 조선일보 부사장이 사장을 맡게 되는 게 현실적인 전망이다. ‘어차피 똑같은 방씨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27년간의 관행을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대교체는 ‘김대중의 퇴장’을 가리킨다. 젊은 조선일보 기자들은 1990년부터 30년째 주필인 김대중씨의 칼럼이 바깥에서 마치 조선일보의 주류적 입장인 것처럼 해석되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된다고 말한다. 조선일보 기자들 사이에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등장하고, 방상훈 사장조차 김대중 주필을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마치 폭도로 묘사했던 기자가 여전히 주필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지면의 한계’는 예고된 것이다. 
▲코리아나호텔에 걸린 조선일보 100주년 축하 플랜카드. ⓒ정철운 기자
▲코리아나호텔에 걸린 조선일보 100주년 축하 플래카드. ⓒ정철운 기자

방상훈에서 방준오로의 세대교체는 20세기 권위주의 시대 기자들의 ‘퇴장’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21세기 조선일보 기자들은 최소한 소위 ‘자유공화당’ 논조로는 1등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면 중심 전략으로 새로운 100년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네이버와 유튜브는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으로 대표되는 뉴스의 독점적 유통·생산구조를 끝장냈다. 이제 언론은 신뢰로 먹고살아야 한다.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이 되려면 신뢰는 높이고, 불신은 줄여야 한다.

방상훈 사장이 밝혔듯 “제일 위험한 것은 사주의 이익, 권력의 이익에 의해 지면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이 되는 내부 방안은 평기자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조선일보 노조 설문결과처럼 데스크 급을 평가할 수 있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거나 혹은 동아일보처럼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거나 중앙일보처럼 편집국장 불신임 건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사내 욕설이나 인격 모독을 줄이고, 능력 있는 기자들이 회사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출발점이다.

조선일보만의 변화로는 어렵다. 우리 사회가 ‘1등 신문’을 유료부수 대신 신뢰 지수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보에 따른 손해배상 판결,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한 정정 보도 횟수, 신문윤리위원회의 시정 권고 현황,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 벌점 현황에 각종 언론사 신뢰도 여론조사까지 더해 그 결과로 신뢰 지수를 산출하고 광고주는 이를 기준으로 광고단가를 책정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학계와 시민사회는 공신력 있는 언론사 신뢰 지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유튜브는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만한 콘텐츠다 싶으면 ‘노란 딱지’가 붙어 광고 수입을 못 내게 하지만 우리 신문은 아무리 오보를 내고 왜곡 보도를 해도 광고 수입에 별 영향이 없다. 사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 권력의 입맛에 맞게 그때그때 논조가 달라지는 신문, 돈 받고 기사 쓰는 신문, 오보·왜곡 보도에도 뻔뻔한 신문에는 현명한 독자들이 ‘노란 딱지’를 붙여야 한다. 기자들은 현명한 독자들의 비판을 귀담아듣고 ‘염치’ 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일보의 창간 100주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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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