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기업에, 손실은 국민에?](상)기간산업 지원 40조 운용 감시체계 허술…기업만 배 불릴 우려
임아영·박상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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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워진 기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40조원의 기금을 조성하면서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게 됐지만 기금운용 감시체계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엄격한 사후관리 규정을 만들지 않으면 기업이 이익을 사유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에 40조원 규모의 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을 지난달 22일 발표했다. 국가 재정건전성에 직접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어서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대신 기금채를 발행해 산은에 기금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대신 정부는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다.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같은 방식은 ‘외부 통제’를 우회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재정법상의 기금이 아니기 때문에 기금운용 실적보고 의무도 없고, 향후 국회에 보고하는 장치도 없다. 정부는 기금심의위원회로 ‘통제장치’를 마련하겠다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원대상도 불명확하다. 정부는 “국민경제, 고용안정 및 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에 속하는 기업”으로 7대 업종을 들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부실했던 기업을 가려낼 의지가 있는지, 실질적으로 구분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고용안정, 도덕적 해이 방지, 기업정상화 이익 공유 등의 조건을 걸어 혈세 낭비 논란을 넘어설 계획이지만 일시적 유동성 지원 이상이 된다면 대마불사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법 개정안 통과 과정에서 고용유지 조건에 대한 문구가 일부 완화된 것도 논란거리다. 정부가 취득한 지분을 해당 기업의 주주가 먼저 매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국민 혈세가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재난지원금 지원대상이 국민의 70%냐 100%냐를 놓고 3조원 차이로 야단법석이었는데, 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는 40조원에 대해서는 왜 조용한가”라며 “정부가 대충 위기만 넘기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기간산업 지원 ‘깜깜이 40조’ 논란 없애려면 사후 통제 ‘꼼꼼히’
산업은행에 기금 설치, 국회 보고 의무 없어…
정부의 감시장치는 심의위원 2명 뿐
‘코로나19’ 이전부터 경영 부실했던
기업들을 가려낼 수단과 의지 있는지도 의문
정부가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기간산업이 무너질 경우 전후방 산업이 타격을 입고 대규모 실직 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이다. 하지만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대책인데 운용 감시체계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깜깜이 40조’ 논란이 나오지 않게 이행점검, 사후관리 체계를 잘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선 산업은행에 기금을 설치하는 방식이 ‘외부통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정상기업’에 대한 지원이기 때문에 구조조정기금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봤다. 구조조정 목적이라는 메시지가 시장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회로로 선택된 기관이 ‘산업은행’이다. 산은에 기금을 설치해 코로나19로 일시적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신청하면 기금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의 ‘투명성’이다. 국가재정법상의 기금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국회에 보고하는 장치도 없다. 대신 정부 입장에선 운용하기 편리하다. 나아정 국회 입법조사관은 “국가재정법상 기금이면 매년 기금운용계획을 제출하고 결산도 제출해야 해 예·결산 통제를 받지만 산업은행법상 기금은 그런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관계부처장관회의에서 논의한 후 기금심의위원회를 거쳐 ‘통제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7명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심의회를 두고 이 중 2명을 국회 소관 상임위에 배정하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논의 중이지만 산업부·금융위·기재부가 참여할 것 같다”며 “감시 장치는 국회 상임위 추천 2명이 포함되니 해결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의회 규모를 키우고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규모가 40조원이므로 최소한 10명 이상 위원이 참석해야 한다”며 “회계 전문가부터 해당 산업 전문가, 전체 산업 전략 전문가와 재원을 설명할 수 있는 공무원들이 참여해야 하고 민간 전문가와 정부 측 인사 간 5 대 5 비율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40조원 규모는 부처별로 올해 5~12월 부족 자금에 대해 수행한 수요조사와 금융연구원 추산 결과를 통해 나왔다. 부처별로 5~12월 기업들의 부족 자금에 대해 수요조사를 한 결과 46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연구원이 기간산업 기업을 대상으로 이 기간 예상되는 매출로 충당이 어려운 경영상 필요자금을 추산한 결과는 44조3000억원이었다. 모두 40조원을 넘지만 기간산업 업종에 해당하는 기업이 다 자금 지원을 신청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40조원선에서 결정된 것이다. 규모는 정했지만 지원 대상 기업은 명확하지 않다. 정부는 “국민경제, 고용안정 및 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에 속하는 기업”으로 방위산업체,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 국가 핵심기술 보유 업종, 필수공익사업 등을 들었다. 5월 중 대통령령에서 자세히 규정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부실했던 기업이 정부 지원 대상으로 둔갑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이런 부실기업을 가려낼 의지가 있는지, 실질적으로 구분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독일의 경제안정기금은 2019년 말 기준 부실기업이 아닌 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정부 지원을 받으면 경영정상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정부는 기간산업에 대해 일시적 유동성 지원을 넘어 자본력 보강 등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신 고용안정, 도덕적 해이 방지, 기업 정상화 이익 공유 등 조건을 걸어 혈세 낭비 논란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산업 쪽에서는 지원을 폭넓게 하면 좋겠다는 입장이고, 재정당국 쪽에서는 납세자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으니까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부터 경영이 어려웠던 기업에 자구노력 대신 유동성 지원만 한다면 대마불사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래 어려웠던 기업과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을) 구분하는 건 어렵지만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대한항공이 2019년 말 부채 비율이 800% 이상인 상황에서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주주인 한진칼에 연간 상표권 수수료 300억여원을 지급하는 것은 대주주의 고통분담 없는 ‘총수일가 배채우기’라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달 금호산업 측에 향후 1년간 120억원을 상표권료로 지급하는 상표권 계약 연장을 단행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사익편취 행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집행되는 막대한 공적기금은 총수일가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작업 중인 시행령에서 엄격한 사후관리 규정을 만들지 않으면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교수는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한계기업이었는데 지금 도와준다면 방만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지원을 할 때는 재무제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선별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을 설득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중요한 때라는 조언도 있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위기 때는 ‘도덕적 설득’이 필요한데 정부가 기업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싶으면 시장에서 알아서 하고 정부에 손 벌리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 등 자구안 요구도 필요”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국민 혈세가 40조원이나 투입되는 만큼 지원 기업에 대해서 고용 유지 조건을 엄격히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적 자금이 총수일가의 경영권 유지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배구조 개선 등의 자구안도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고용 및 기업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4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조건으로 고용안정 등을 먼저 내세웠다. 정부는 일정 기간 일정 비율 이상의 고용총량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고용노동부가 반기별로 변동 상황에 대해 점검한다는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고용 유지 수준을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에서 정한다는 원안이 노사가 함께 노력한다는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취득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내용도 추가됐다.
미국 등 주요국들도 코로나19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을 지원하면서 고용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항공사에 25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9월 말까지 고용 유지 의무 조건을 못 박았다. 미국 재무부는 지원금의 70%는 급여 보조금으로 쓰도록 용도를 정했으며 1억달러가 넘는 대출금의 10%는 신주로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도 했다.
독일도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을 대상으로 보수·배당 제한과 일자리 목표를 부과했다.
개정안에 정부가 취득한 지분을 해당 기업의 주주가 먼저 매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 혈세가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 없는 지원을 반복하게 되면 대마불사의 악순환만 반복되는 만큼 시행령을 통해 지원 조건을 좀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지원 조건으로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의 자구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며 “평소에는 대주주로서의 이득을 누리면서 정작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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