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양승태 대법원’으로부터 각종 사찰과 압박을 받았던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62)은 2일 “사법부가 독재정권 정보기관이나 할 짓을 했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전 회장은 서울 서초동 개인변호사 사무실에서 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의심만 했던 압박 정황들이 대법원의 치밀한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돼 너무 충격적이고 허탈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하 전 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자신을 압박하기 위해 만든 문건을 직접 봤다고 한다. 하 전 회장은 “문건에 적힌 수십개의 압박 방안 중 상당수가 실제로 실행됐다”며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사대회 불참, 대법원·변협 간 간담회 중단, 자신의 수임 사건에 대한 비판 기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사법부의 행태는 중대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이런 짓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전 회장은 지난달 27일 검사에게서 처음 진술 요청을 받았을 땐 조사에 응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전직 변협 회장으로서 다른 변호사들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다. 하지만 “문건을 보고 결정하라”는 설득에 검찰청에 갔다. 하 전 회장이 검찰에서 본 문건은 5개였고 수십페이지에 달했다.
변협에 대응하는 대법원 문건은 작성자가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 하 전 회장을 압박하는 방안이 적힌 문건은 작성자가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 “행정처 문건 압박 방안 상당수 실행, 내 재산 사찰·변협 선거 개입 의혹도”
“의심만 했는데 대법 치밀한 각본 있었다니 너무 충격
대법원장 변호사대회 축사·변협 간담회 등 실제 중단
‘정치꾼으로 몰아야’ 내용도…관련자 엄중히 처벌해야”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했던 자신을 압박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하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문건에 적힌 수십개의 압박 방안 중 실현된 것과 일부 실현된 것, 실현되지 않은 것을 분류했다. 실행된 것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는 “매년 8월에 하는 변호사대회에 대법원장이 빠짐없이 와서 축사를 하는데, 양 전 원장은 내가 회장인 2015~2016년 두 해 연속 오지 않았다”며 “설마 상고법원에 반대해서 그런가 의심만 했는데 문건에 ‘변호사대회 불참’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대법원과 변협 사이에 1년에 1회 이상 진행하던 간담회도 끊겼다. 그는 “변호사들이 재판 진행과 관련한 건의사항을 전달하고, 재판 협조사항을 전달받는 중요한 자리인데, 한 번도 안 했다”며 “문건에 굵은 활자로 ‘대한변협과의 간담회 중단’이라고 적혀 있는데, 정말 너무했다 싶었다”고 말했다.
대한변협이 주관하던 경력법관 심사를 각 지방변호사회로 넘긴다는 방안도 2016년에 실행됐다. 그는 “문건에 이 방안을 설명하면서 원교근공(遠交近攻·가까운 나라를 치기 위해 먼 나라와 손잡아라)이라는 전국시대 전쟁 고사를 인용했다. 변협이 무슨 적대국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의 하 전 회장 개인에 대한 공세도 많았다. 하 전 회장은 2015년 5월 한 일간지에 실렸던 기사의 스크랩을 보여주며 “기사가 나올 당시 대법원에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의심이 들었는데 문건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고 말했다. 하 전 회장이 취임 전에 수임한 사건을 변협 사무차장에게 맡겼다는 비판 기사였다. 기사가 나오기 한 달 전에 작성된 문건엔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이용해 하 전 회장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문건에는 하 전 회장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은 돈키호테’로 묘사하고, ‘상고법원에 반대해 물의를 일으키는 정치꾼으로 몰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하 전 회장은 “나에 대한 자료를 다 모아놨더라. 내가 이 조그만 건물(변호사 사무실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걸 알려서 개혁적 이미지를 손상시켜야 한다는 방안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초동이 개발되기 전 비닐하우스 있던 시절에 산 땅”이라며 “대법원이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관장하니까 주민번호 검색하면 나오지 않았겠나”라고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대법원의 견제는 2014년 12월 하 전 회장이 대한변협 회장에 출마했을 때부터 진행됐다. 하 전 회장은 “변협 회장 선거 판세를 정리한 문건을 보니, 1위부터 4위까지 순위를 정확히 맞히고 나에 대한 예상 득표율(30%)도 실제(35.4%)와 근사치였다”면서 “문건엔 내가 아니라 2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결선투표에 가게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하 전 회장은 3분의 1 이상을 득표하면서 결선투표 없이 1위를 확정해 대법원의 의도는 무산됐다. 그는 “법원이 변협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 전 회장은 대법원이 문건을 작성한 목적에 대해 “나의 상고법원 반대 입장을 바꾸려는 것”이었다고 추정했다.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정치권과 법조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였던 2016년 상반기에는 주위 아는 법관들을 통해 “상고법원 반대 입장을 철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압박도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하 전 회장은 상고법원이 위헌이며, 국민의 사법 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 전 회장은 “대법원의 행태는 중대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검찰 조사 마지막에 ‘관련자들을 처벌해 이런 짓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선례를 남겨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하 전 회장은 “지난해 대법원의 1·2차 조사 때까지만 해도 설마 대법원이 법관 사찰 문건을 만들었을까 했는데 이번에 나를 대상으로 한 사찰 문건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나 같은 재야단체 수장도 사찰하는데 법원 내부 사찰은 더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각한 건 국민들 사이에 ‘대법원이 개인 사찰도 하는데 내부에 판결 부탁 하나 못하겠나’라는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신속한 검찰 수사와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