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내신상┓

보신각에 서서 재야의 비망록

행복 한 삶 2018. 10. 22. 16:43

 

요,

  

한해를 마감 짓는 재야의 시간

혼란스럽던 보신각 바라보면서

지천명의 비망록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幸福한 삶 梁南石印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할 일이 많아서

기쁨이 충만한 날들만 함께 하시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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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가는 ♡┃

/)/)˚ 함께▶♡┃

( . .)♡하는▶♡┃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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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함께하는

/)/)˚ 실패

( . .)고통

(⊃⊂)나눔

(⊃⊂)축복

(⊃⊂)사랑

함께 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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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감 짖는 재야의 보신각에서 떠오른 지천명 비망록...!

    幸福한 삶 梁南石印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할 일이 많아서 기쁨이 충만한 날들만 함께 하시길 빌면서 꿈과 소망을 가득 담고서 밝아온 己丑年 새해 초야에 함께 하고픈 임들이나 저나 무슨 일을 하매있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중 하나 시작이 있으면 쉼표가 있으며 쉼표 뒤에는 느낌표나 물음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것이 세상 모든 이치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 시간은 무슨 표를 찍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물음표가 될 것이다.???

 

왜 그랬냐고? 하며 지금은 어찌되었느냐고? 희망이 보이느냐고? 하는...?물음표 뒤에 매듭을 풀어내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己丑年이다.

 

내 생에, 내 삶에 있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들이 적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내게 주어진 흐르는 시간 용빼는 재주 없어 멈출 수 없음에 60갑자 무자 년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 생각하니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기만 한 시간이다,

 

보신각 재야의 타종소리에 꿈과 소망을 싫어 보내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는 인파 중 행여나 누가 볼 새라 주머니 속 깊숙이 집어넣고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유무형의 무자 년이란 세월속의 상념들 주마등처럼 스쳐 추억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니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모를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내생의 마지막이 될 60갑자 무자 년에 내게 불어 닥친 폭풍 세차게 불어온 폭풍 앞에 춤을 추던 파도에 휩쓸려온 모래톱 쌓여 굴곡진 모래언덕에 채이고 넘어져 뒤엉켜버린 실타래들 슬기롭게 풀어내지 못한 저리도록 안타까운 현실 한 발 짝도 앞으로 헤쳐 나가지 못 한 무자 년 아니더냐!

 

그런 까닭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회한(悔恨)과 아쉬움 가득한 까닭에 주머니 속에 양 손 깊숙이 넣고서 만지작거릴 때 나와는 영원히 이별을 고할 시간이 되었다고 앙탈 부리는 무자 년 재야의 시간 만감이 교차하여 아쉬움으로 가득 한 시간 인(人)력 으로는 어찌 할 수 없었던 가슴시리도록 아파 울고 팠던 무자 년 그렇기에 아쉬울 것 하나 없어 한시라도 급하게 서둘러서 떠나보내고 싶었던 그 무자 년 재야의 밤 보신각...

 

예정 없었던 그런 제야의 종소리 듣고자 언제나 격의 없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애환과 정담 나누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인 수도 과에 근무하는 동료내외와 서울역에서 청개광장까지 추위에 쫓기 듯 종종 걸음 재촉 할 때 불타버린 숭례문이 장막에 가리어져 눈에 들어온다.

 

저려오는 가슴 안타까운 마음에 담배 한 개 피 입에 물고 길게 빨아 댕기는 담배 불 빛 속에는 고고한 자태 뽐내며 600여년을 우리민족의 삶의 애환과 아픔을 함께 공유하면서 늠름하게 버티고 서있던 숭례문이 절재하지 못한 탐욕에 눈이 먼 병든 영혼이 분풀이로 저지른 이기심 이겨내지 못하고 뜨거운 화마에 휩싸여 불기둥에 버둥대며 불타던 숭례문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일그러진 영상 떠올라 담뱃불 짓이겨 끄고서 시청 앞 광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시청 앞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들 새하얀 입김 토해내면서 추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노래와 격렬한 춤사위 덩실덩실 흥 취한 모습들 광장 한 복판 스케이트장에는 순진무구한 개구쟁이 천사들이 넘어질듯 뒤뚱거리며 신나도록 얼음을 지치며 노는 모습 뒤로 한 체 청개광장을 향해 돌아섰다.

 

청개광장의 형형색색의 불빛 속에는 고막을 자극하는 음악이 흐르고 거리에는 수많은 연인들과 추위에 떠는 아이들 목도리 싸매어 고사리 손을 잡고 걷는 젊은 부부들 여기저기서 먼~훗날 빛바랜 추억속의 책장 넘기며 회상할 때 얘기꽃 피워낼 한 페이지 빼곡히 채우기 위해 분주한 모습들 우리도 뒤 질세라 틈새 비집고 후래 쉬 몇 방 터트릴 때 수정처럼 맑은 물 힘차게 흐르는 물길 건너 다듬어지지 않은 혈기로 자유 분망한 꿈에 부푼 혈기 왕성한 고교생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차가운 돌바닥에 퍼질러 앉자 마치 혼에 쓰인 듯 신명나도록 연주하는 사물놀이 눈길 붙잡아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의 덕담 한마디 건네고 따뜻한 해장국으로 몸을 녹이라 5만원 건네며 아쉬운 발 거름 돌려 이내 보신각 앞에 서있다.

 

수 만 명의 인파와 방송법 개악저지를 위한 촛불 집회를 대비해 차출된 약160여개 중대의 전 의경 사이를 헤집고 보신각종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기위해 한발 한발 시린 손 호호 불어가며 보신각에 다가서 건물 외벽에 레이저빔으로 쏘아대는 영상물 10분 5분 10초~9~8~1초 고막을 울리는 함성소리와 함께 카운터를 외칠 때 폭죽은 하늘을 향해 쏘아지고 오색 창연한 불빛이 사방에 흐트러져 발할 때 색색의 고무풍선은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물고기처럼 살판이 난 듯 두둥실 떠가는 모습 바람이 시키는 대로 자유를 찾아 목적지 없이 이내 우리들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60갑자 제야의 시간은 내게 보체고 있다.!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눈만 깜빡이며 태연한 척 고자세로 서 있는 내게 60갑자를 향한 머나먼 여행길 채비가 다 끝났으니 지체할 시간 없다고 앙탈을 부리는 재야의 시간 앞에 어쩔 수 없이 보낼 수밖에 없는 나는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 근심 반 기대 반으로 두 눈을 깜박이며 깨금발로 보신각을 바라본다.

 

내게 주어진 무자 년은 이정표마저 세울 수 없는 광활한 사막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험난하기만 했던 그 무자 년 한 해 동안 뚜벅뚜벅 걸으면서 한줄기 빛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끝이 어딘지도 모른 체 외롭고 고단했던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는 동안 하늘을 비행하며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를 보고 두려움에 떠는 독사가 똬리를 튼 체 혀를 날름거리듯 내게는 너무도 힘에 겨워 원망스럽기만 했던 무자 년...

 

목숨을 의지하고 타고 가던 배를 삼켜버릴 것 같은 집체만한 성난 파도가 춤을 추는 망망대해에 두둥실 떠있는 난파선에 몸을 싫었던 심정 낱선 풀벌레 소리마저 무섭게 들리어 움츠린 몸으로 깜깜한 밤길을 걸을 때 가야할 목적지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밤하늘 별빛마저 잠들어 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무자 년 지천명에 엉켜버린 실타래 풀어보려고 무딘 애를 써 봤지만 한번 엉킨 실타래 지혜를 짜 내어 봐도 쉽사리 풀지 못하여 원망할 수조차 없었던 무자 년 한해 마음 적으로 정신적으로 만 진창이 되어버려 견디기 어려울 만큼 참으로 힘겨웠던 한해였었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기대고 부빌 언덕이 없었던 내가 꿈꾸어왔던 행복한 삶이란 남들처럼 재물을 탐해 본적도 출새를 위하여 바동거리며 줄을 서 본적도 아부해 본 적도 없이 무슨 거창한 것을 꿈꾸어 본적도 없었던 삶이였는데!!!

 

성실이 살아오면서 내가 일구어온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 뿌린 씨앗들 싹 티워 피워낸 마음 건강한 가족 하나면 족 하리라 생각하고 살아온 내가 아니었더냐!

 

어린 시절 무려 4명이나 되는 사촌 동생들 등에 없고 동내 할아버지 틈바구니만 맴돌며 살아온 나는 애늙은이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었지!

 

내 형제들은 일 한번 하지 않고 나보다 교육도 더 받고 살아왔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철들면서 부터 지천명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오직 일 이외는 향락이나 오락에 곁눈질 한번 해 본적 없이 함께 어울리며 묻어갈 수 있는 놀이하나 대화하나 할 줄 모르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한심한 삶을 살아온 내가 아니던가 말이다.

 

지금까지 내 자신을 괴롭히는 2가지 중 한 가지는 초등학교 시절 교실을 바꿔 시험 보던 날, 내가 앉은 자리 책상 위에 놓여 저 있던 전과 책을 몰래들고 나왔던 것이 들통 나 창피한 생각에 더 이상 학교에 등교할 수가 없었다.

 

내 가정 형편을 잘 아시던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내게 자상하게 대해주시던 담임께서는 그 자리에 앉자있던 나를 아무도 모르게 따로 불러 너 앉자있던 자리에 전과 책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너 앉자 있을 때 보았느냐고 물어와 떨리는 마음으로 같고 싶어서 시험 끝나고 나오면서 들고 나왔습니다. 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자 너와나만 알고 있는 일이니 다음부터는 절대 남의 것에 손대면 큰일 난다고 말씀 하시며 모른 척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더 이상 등교할 수가 없었다.

 

등교를 하지 앉자 선생님께서 수차래 집에 찾아오셔서 등교할 것을 설득하고 할아버님께 회초리라도 들어서 등교시킬 것을 당부 하셨지만 부끄러운 생각에 도저히 등교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은 전과가 필요했던 것도 아녔는데 무엇 때문에 탐을 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도무지 알 수없는 일이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어려서 부터 오랫동안 동내 아주머니 옷들 빨래 줄에 빨아 널어놓은 옷을 몰래 걷어다 찢거나 불태웠던 일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지금까지 자괴감과 자책감에 시달리며 지울 수 없다.

 

특히나 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어려서 부터 지천명이 되도록 여자로 살고 싶은 마음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누구에게 말 할 수도 없는 아주 수치스러운 생각에 늘 나는 왜 그럴까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훗날 병원 의사선생님께 상담을 하면서 말씀 드리자 어머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 하시며 내가 여자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인데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이라고 조언 주시며 수치스런 생각이나 죄책감을 가지면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씀 하시고 모성결핍과 애증결핍 애정결핍으로 인한 행동과 지나친 결벽증이 원인이라고 말씀 하시며 자신을 학대하면 할수록 자신을 더욱 망가뜨리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자꾸만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되는 것이니 깊이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박힌 못을 뽑아낸다고 못 자국이 없어 진다더냐! 한번 뇌리에 각인된 것들이 마음대로 지워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살아왔어도 굶주림에 허기졌던 일, 한번 없었으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일 년 12달 내 키보다 더 큰 똥지게 까지 져 보고 집 앞 방죽에 자라는 어른 키보다 더 큰 줄나무라는 다년생 수초가 무성하게 자라면 겨우내 추위를 이겨낼 아궁이 땔감으로 쓰려고 낫으로 베어 지게로 져 날라 마당 한 귀퉁이 지붕 높이만큼 쌓아놓고도 한겨울에도 산으로 들로 땔감 하러 다니던 모습에 동내 어르신들 너는 이담에 커서 꼭 성공할 것이라고 칭찬을 자자하게 듣고 자라면서 너는 공밥 먹지 않고 큰다고 하시던 말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건만 그 분들이 말씀 하셨던 성공할 것이라는 말씀은 어떠한 삶이 성공한 삶인지 반문하고 싶은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하기야 교육이라고는 출석일수로 따져 고작 3년 남짓으로 사둔에 팔촌 벌 되는 사람 하나 없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 하여 지금껏 별 탈 없이 근무하고 있다면 이것도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50여년이 지나도록 온갖 상처들 지워지지 않는 내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기억들 포맷하고픈 기억은“망각”이란 기관이 한눈파느라 제 할일을 잊어버렸는지 오랜 세월 내 기억 속에 퇴색되지 않고 각인된 무언가 모를 두려움과 보고픔에 사무친 잊을 수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어린 시절 눈물로 절여진 추억 속에는 부친의 술과 도박으로 가세가 기울어 풍비박산 난 가정사로 인해 내 조부님과 내 작은아버님가족 내 형제 5명 등 무려15명의 대가족이 빈곤한 삶속에서 역경을 헤치며 살아왔기에 내가 철이 들면서 지금까지 술과 도박에는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살아오면서 훗날 내 가정을 꾸리면 비록 헐벗고 굶주린 삶이라 해도 내 가족만큼은 마음만은 편하게 해 주리라 다짐하며 살아왔었다.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 귀에는 사치스런 말장난쯤으로 치부하겠지만 경제적인 풍요로움 보다 지하 월 새 방을 살아도 방새를 제때 줄 수 없는 형편의 빈곤한 삶이라 해도 당장 밥 지을 쌀 한 톨 없어 서로가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눈치만 살피는 삶인들 어떠랴 내가 언제 호강하며 살아온 삶이였더냐!

 

마음건강하고 몸만 건강하면 못할 일이 무엇이며 죄짓는 일이 아니라면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거나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는 신념 가슴에 세기고 내 생의 두 번 다시 함께할 수 없는 무자 년 재야의 시간까지 살아오면서 육체적인 호강이나 물질의 풍요로움 보다는 밤늦도록 노동판을 전전한들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땀에 찌들어 코끝을 자극하는 고약한 냄새 풍길망정 어두워지면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고단한 몸 이끌고 온기 가득한 집에 들어오면 수선떠는 아이들이 해맑은 웃음소리로 반겨 맞으며 아빠 품을 파고들면서 아빠 힘들었지!

 

아빠 일하시느라 많이 힘들 때면 아빠를 걱정해주는 우리 가족들 생각하면서 잘 참고 힘내서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예뻐해 주는 우리들이 바르게 커가고 있잖아! 빨리 자라서 돈 많이 벌어 아빠에게 힘이 되어 줄께!

 

힘내세요, 라고 재잘거리며 온종일 일터에서 흘린 땀 냄새 아랑곳 하지 않고 가슴팍 파고들며 반갑고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아이와 처만 있다면 내 뭣을 더 바라겠는가 하는 마음 풍요롭고 따뜻한 사람으로 가정을 꾸리리라 다짐하며 살아왔었다.!

 

그런 내가 아내를 아내로 바라보거나 대하지 않고 엄마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때로는 엄마처럼 따뜻하게 감싸안아주기 바라다 부족하다 싶으면 성장하면서 어머님에 대한 원망이 아내에게 표출되고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처음 들었을 때에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모두가 수긍이 가는 것을 어쩌랴!

 

그에 파생되는 문제들 누구에게 하소연 할 것이며 누가 알아줄 것이더냐! 꼭 나 혼자만의 잘못이라 치부 하고 말 것인가! 아내는 어디까지나 아내일 뿐인 것을...!

 

나만 아프다고 나만 이해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더냐...!부부란 뭔가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의논해 가면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완벽한 원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을...!

 

지금에 내가 있을 수 있도록 해주신 내 부모님께 한없는 눈물 쏟으며 원한에 사 묻힐 정도로 원망하며 내가 어른이 되면 부모님을 반듯이 찾아내 복수 아닌 복수를 할 것이라 다짐하기를 몇 번이던가! 내 어머님과 가깝게 지내셨다는 친구 어머님께서 사촌 동생들 업고 놀러 가면 내게 하시던 말씀 반듯이 네 어머니가 너희를 데리러 올 것이란 말씀에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할머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나 집에 들어갈 때면 어김없이 토방에 낮선 신발이 보일 때면 선뜻 집에 들어가지 않고 누군지 확인이 될 때까지 집 주위를 배회하며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 보고 싶었으면서도 두려움에 떨어야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외로움에 절여져 여자도 한번 사귀어 본적도 없이 장가들면 낳을 아이들 이름을 한문도 배운 적이 없으면서 옥편을 사다 뒤져가며 딸린 주석 읽어가며 나의 소망이 담긴 성(成)큰 꿈을 품고 이루어 큰 사람이 되라는 용(龍) 민(民)함께 더불어 선(善)하고 미(美)아름답게 영(榮)화를 누리면서 살아가라는 뜻을 가진 아들딸 둘씩 4개나 지어놓은 웃지 못 할 코미디 같은 일화도 있었다.

 

너무도 엄하신 조부님께서는 늘 엄격하고 조용하기만 다그쳐 대가족 이면서 대화라곤 없었던 어린 시절 외롭게 성장해온 나는 늘 사람이 그리우면서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싫다. 사람이 싫으면서 사람이 그립다.

 

멀건 대낮 이라 해도 사무실이든 내 집에 아파트든 혼자 있는 것은 귀신보다 더 무섭고 싫다. 사람이 싫으면서 혼자 남겨진 것은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두렵고 무섭다.

 

지천명까지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여져있는 마음속 깊이페인 아픈 상처들 내 혈육이라고는 하늘아래 오직 내 자신뿐 결코 적지 않은 4남1녀 중 부모를 만나고 난 뒤 차례대로 술로 지새우다 모진 목숨들 자기들보다 열배는 더 일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나는 어떡하라고 스스로 이승을 등져 감당할 수 없도록 너무나도 아파서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어 무음으로 울어야만 했던 고난의 상처들 차라리 한 날 한시에 이승을 등졌더라면 덜 아팠을 것이다.

 

보고픈 내 조부모님 형제들 잊을 만하면 청천병력과 같은 조부모님 부모님 형제들 죽음을 알리는 급전이나 전화벨 소리 지금도 가족 중에 외출 할 때 나간다는 소리는 정말이지 듣기 싫고 무언가 모를 두려움에 떤다. 특히나 기분 언짢아 외출 한다고 하면 현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말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80년대 중반까지 눕기만 하면 쉬 잠들던 것이 언제부턴가 잠자리에 들면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들 떠올라 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언제나 갈등 속에서 내 자신과 싸워 이겨내야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하는 자책감에 내 자신을 옥죄어 가면서 살아왔었다.

 

사람이란 복잡한 곳에 바글대며 지지고 볶고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미운 정 고운 정 쌓이는 것을 내 모르는바 아니건만 쉽사리 마음도 열지 못하고 하는 것은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유년기 때 받은 상처로 인해 그러는 것이란다.

 

잠제 의식 속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원망과 분노에 따른 슬픔으로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까닭에 자폐아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홀로 있거나 나간다는 소리 들으면 저 사람도 혹시나 하면서 나를 버리고 가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과 두려움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가족이나 의사는 간접적인 도움에 그칠 뿐 무엇보다 본인에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어려서 받은 상처는 쉽사리 치유가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여러 면에서 변화되어 있다.

 

어르신들 말씀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다.

훗날 몇 칠을 물어물어 찾아낸 내 부모님께

 

첫 번째 질문은

내가 태어나서 난생처음 써보는 낱말인지라 내게는 너무도 생소하기만 했던 아버지란 낱말 어색함 속에 아버지 손을 보니 저보다 고생을 덜 했나 봅니다. 저는 일만 하고 사느라고 손마디가 굵어 반지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내 나이가 도대체 몇 살 입니까?

출생신고가 몇 년 늦어 올려 졌다고 들었는데 생일은 언제인지 저도 알고 있지 못합니다. 집안 내력을 물어보면 모두가 쉬쉬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저는 동물을 좋아합니다.

미물이라 업신여기는 짐승들 누구도 가리켜 주지 않았지만 모든 짐승들 하나같이 발버둥 치며 낳은 지 새끼들 낳자마자 출산의 고통도 잊은 채 본능적으로 태반을 벗겨내고 체온을 유지시켜 지 세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혓바닥으로 온 몸뚱이 할 터주면서 낮선 사람들이나 다른 짐승이 가까이 다가서면 아무런 힘없는 닭대가리라 비하하는 닭들까지도 바 등거리며 날개깃과 벼슬을 새우고 요란한 울음소리 내면서 이기지도 못할 사람에게 덤벼듭니다.

 

하물며 사람으로 살면서 자식을 하나둘도 아닌 5명이나 버려두고서 그동안 보고 싶지도 않으셨느냐 말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왜 찾아 나선지 아십니까?

 

지금까지 어른이 되면 부모님을 찾아 자식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고 호강하며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던 만큼 모질게 복수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복수는커녕 초 최한 모습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마음뿐이니 내 어찌 해야 합니까!?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내가 천륜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그토록 미웠던 아버님이 무릎을 꿇고서 네 속이 후련해 질 때까지 나를 용서치 말거라 하시며 우시던 모습 미웠습니다.

 

당신을 찾아 나섰다 물어물어 간곳에 당신이 이사를 했으며 이사한 곳을 모른다는 집주인의 말에 암담했지만 혹시나 하고 거리로 나와 지나는 사람들 붙들고 혹시나 저 집에 사시던 양 태자 인자씨 이사한 곳을 아시는지 묻기를 수차 젊은 친구 하나가 걸어와 또다시 질문을 했더니 대뜸 혹시 부안에서 오셨느냐는 질문에 의아해 어떻게 아시느냐고 묻자 대뜸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느냐며 내 손을 끌어 댕겨 근처 구멍가게로 이끌고 들어가 당신이 한때 잘못으로 자식들과 헤어진 뒤 하루도 우리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말을 들어보면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흥청망청하면서 술과 도박을 일삼는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늘 말씀하셨다고 들려주더군요, 나도 내 고향집에 가면 나를 낳아주신 반겨줄 부모형제가 기다리고 있으며 자식들이 5명이나 있지만 한때 절재하지 못한 잘못들로 온 집안에 가산을 탕진하고도 눈물로 호소하시며 자식들 생각하고 바르게 살 것을 훈계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뉘우치지 못하자 당신 아버님께서 눈에 흑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당신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시며 내 쫓겼다는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평생을 눈물로 지새우며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고 귀가 아프도록 들려주며 그러니 자네들도 함부로 살지 말라고 한번 엉클어진 삶은 풀어 헤칠 수 없는 것이라며 늘 타이르며 감싸주어 당신 형제들 이름도 다 외우고 있다고 하는 말에 당신에게 쌓이고 절여진 내 가슴속에 응어리져 사무치도록 원한 맺힌 그립고 보고픔에 절여진 원망들 봄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려 아~그랬었구나!

 

내 아버지도 우리를 잊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당신은 모르실 것입니다. 자식이라고 낳아놓기만 했었지!젓 한번 밥 한 끼 먹여 준일 없는 내 부모님 찾아 면목이 없어 싫다는 부모님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가 해주는 밥 한 끼는 드시고 돌아가셔야 할 것 아니냐!

 

그래야만 저도 마음 편할 것 같다고 설득해 배다른 여동생과 함께 내 집에 모셔와 아내의 정성스런 밥상 차려드리고 물리친 뒤 아내와 결혼할 때 해온 유일한 혼수품 이부자리 펴드리고 이것이 당신 며느리가 시집올 때 해온 이부자리입니다.

 

편안하게 주무시고 아침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다락으로 올라가 아침이 되어 눈을 떠 방으로 내려오니 이부자리는 웃물에 곱게 개어져 놓여있고 당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치는 생각에 동대문지하철역으로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심장이 멎어버릴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플랫폼에 서 계시는 당신을 발견하고 시선 아량 곳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왜 그러시냐고 꼭 이렇게 말씀 한마디 없이 도망치듯 가셔야할 이유가 있느냐고 가만히 계시다 아침 드시고 나면 모셔다 드릴 것이라 말씀 드리지 않았느냐고 하는 고함에 촉촉이 젖어드는 눈가에 맺힌 눈물 보일까 돌아서시며 내가 무슨 염치로 너희들 밥상을 받겠느냐 못난 아버지 용서하고 너희들 잘 살기만 바랄뿐이다 하시며 이불도 덮을 수가 없었다. 라시며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염치로 자격도 없는 시아비라며 며느리 밥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하시며 굳이 돌아가시겠다는 당신을 설득해 집으로 모셔와 아침을 드시고 난 뒤에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로 유명한 화성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아픈 마음 씻기어 당신 찾아뵙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날 동내 이장님에게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습니다.

 

급하게 동탄으로 와줄 수 있느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되묻자 와서 얘기 나누자고 하는 말씀에 급하게 동탄으로 향했던 일 이장님 말씀에 의하며 제가 당신 댁에 다녀간 뒤에 어김없이 있는 듯 없는 듯 늘 말수 없이 늘 조용하기만 하시던 당신이 술에 만취되어 정신을 놓아 온 동내를 공포로 몰아넣는 일이 벌어진다고 심지어 이웃집에 살림도 부수고 사람도 죽이겠다고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모두가 불안에 떨다 정신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구한다고 아마도 죄책감에 그러는 것 같으니 당신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이장님 말씀에 이해가 되어 발길을 끊었습니다.

 

무심한 세월 속에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용인 구자연농원에 봄나들이 다녀와 잠긴 문 열려다 신발장에 꽂혀 있는 메모지에는 많이 보고 싶었다. 네가 오지 않아서 한번 보고 싶어 찾아왔지만 네가 없어 그냥 돌아가니 부디 잘 살기 바란다. 라는 메모지 한 장에 주체할 수 없었던 눈물...!

 

당신을 다시 찾아뵈었지만 이번에는 당신으로 인해 고난의 질곡 속에 허우적거리며 놀음 빛 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동내 어른들 말씀 귀담아 듣지 않고 가산을 탕진하고도 모자라 시쳇말로 내 할아버님 내 작은 아버님은 어디가 부족한 분들인지 당신외상 놀음 빛 까지 평생을 갚아 오시며 살아오신 당신 동생이며 우리 5형제를 길러주신 작은아버님 집에 찾아가 말도 안 되는 귀신이 쫓아다니며 돈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와 행패를 부린다는 작은 아버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고향집으로 달려가 당신을 모시고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올라올 때 기차 안에서 당신은 정신을 잃은 듯 귀신에 홀린 듯 말도 안 되는 행동들 차마 부끄러운 시선들 어찌할 수 없어 죽고만 싶었던 시간과 달리는 열차의 속도는 더디게만 느껴졌는지 흐트러져버린 운명 앞에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며 자책이라는 귀신에 홀려있는 당신의 행동 바라보며 원망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고 홀가분하게 내 곁은 떠나버린 내 형제들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또 한편 부러웠습니다.

 

몇 년이 흘러 당신의 환갑잔치를 열어드리고 또다시 세월은 흘러 당신이 한 많은 질곡 속에서 벗어났다는 동내 이장님의 다급한 전화한통을 밭고 달려가던 날 저는 낳은 정 보다 기른 정이 더 우선하다고 생각 하고 살아왔기에 당신 죽음을 친구 한명 이외는 직장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까닭은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낳은 정 보다 기른 정이 더 소중하기에 갚아야 할 빛 이라 생각하고 내 작은 아버님 작은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부고를 띄우기 위해 알리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초라해진 내 모습 아는 분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내 자신의 혼례식 올릴 때에도 아이들 백일 돌잔치 때에도 몇 명의 친구 이외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격식이고 관례고 따질 처지가 되지 못해 당신의 장례는 당일로 끝내려고 노력했지만 검사의 사망검안서가 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틀 장으로 서둘러 치루면서 당신 관을 운구할 사람 하나 없어 당신이 낳은 자식들 중에 유일하게 살아 숨 쉬며 고통 받고 있는 상주인 나와 당신이 고통만 안겨주었던 당신동생들과 함께 관을 운구하여 화장터에 가는 시간 내내 부모형제 자식들 가슴에 못 박고 피눈물 쏟게 했던 당신이 추구했던 삶이 이렇게 관하나 들어줄 사람 없는 비참한 삶이 당신이 가족을 버렸을 만큼 가치 있어 원했던 삶이였냐고 나 혼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통곡했습니다.

 

살아온 내 어린 삶속에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살아온 것이 한이 맺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가정만큼은 굳건히 지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결혼할 때 아내에게 다짐 받기를 병사든 사고사든 나보다 절대로 먼저 죽어서도 안 될 것이며 혹시 아이들이 성장하기 전에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게 된다면 나는 당신의 장례식을 치루고 아이들과 함께 미련 없이 당신 뒤를 따라 갈 것이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결손가정만은 내 아이들에게 대 물림 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다짐 받고 살아온 지천명에 들어서 내 어린 시절 쌓이고 쌓인 그립고 따뜻한 정을 갈망하며 살아왔건만 일순간 물거품처럼 살아져버린 재야의 밤 숨이 막힐 듯 째깍거리는 초침소리는 60갑자의 여행 길 걸음걸이를 재촉하는데 너나할 것 없이 대망의 己丑年이 밝아 온다고 모두가 난리 블루스를 치며 들떠서 행복을 그리며 움켜쥐겠다고 새롭게 다짐들 해 보며 아우성이지만 새 년이 밝아 온다고 달라질 것이 메이더냐! 모두다 숫자 놀음에 불과 한 것 아니더냐! “내게 다가온 己丑年이 숫자 놀음인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 마다 새로운 각오와 마음 다짐으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끊고 맺음이란 계기가 주어졌을 때 붙잡아야 되는 것을 비울 것은 비우고 풀지 못할 것들 붙들고 머리 싸매어 봐야 안 될 것은 당찬 각오로 내 팽개쳐 버리는 己丑年 새해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고운 꿈 간절한 소망을 담아 상처로 얼룩진 내 작은 가슴에 품어 안을 수 있는 새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파고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군상들 뒤로 한 채 가겠다고 앙탈 부리는 무자 년 제야의 보신각의 종소리 60갑자 무자 년은 지천명 중반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나와는 “내 생에 두 번 다시 함께 할 수 없다고 마지막을 고하는 무자 년 재야의 애닮은 종소리 울려 퍼질 때 우리 모두의 삶의 애환들 머나먼 60갑자 길 떠나는 무자 년 행여나 눈치 챌까 싶은 조바심에 두근대는 가슴 차갑고 거친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울려 퍼지는 종소리 여울 속에 살그머니 싫어서 보내려 할 때 아우성치는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발버둥 치며 용을 써 봐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마구 떠밀려가면서 스쳤던 상념들 집에 돌아와 밤새워 글로 옮겨 본다.

 

사랑했던 사람들 미워했던 사람들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보냈던 무자년 재야의 보신각 앞에 넘쳐나는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룬 통제 불능의 혼란들 새하얀 연기 흩뿌리며 굉음 속에 터지는 색색의 폭죽, 하늘을 뒤 덮는 풍선들 날카로운 호루라기소리에 묻혀버린...!

 

내가 소망했던 것들

내가 꿈 꾸어왔던 것들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

내가 보듬고자 했던 것들

내가 가꾸고자 했던 것들

내가 키우고자 했던 것들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

모두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은 거창한 것도 아닌 소박한 꿈을 그리며 내가 지키려 무던히도 노력하며 애를 써왔던 정체성 가치관 자존감과 자존심 자아가 하루아침에 나의 소망과 꿈들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굉음과 함께 무참하게 스러져 버리는 고목처럼 내가 그리며 지향했고 소박하게 꿈꾸어왔던 행복한 삶을 향한 내 목숨보다도 더 소중히 지켜왔던 내 삶의 가치들 그런 내 삶을 지탱하던 가치들이 일순간 조타수 없는 난파선이 갈피를 잡지 못 하고 기우뚱 거리며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처럼 어둠속을 해매고 있는 내게 마치 꾸지람 하듯 무질서한 인파에 떠밀린 내가 지나온 나의 삶이 그러했듯이 자꾸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떠 밀려가고 있다. ♡!???!♡

 

昭望(소망)가득한 雄飛(웅비)의 나래로 반겨 맞고픈 새해 설령 昭望(소망)이 무참히 짓밟혀 서럽도록 낯 설은 새해가 될지라도 겸허하게 順應(순응)하려는 노력 속에 재야의 밤에 간절한 昭望(소망)을 그리며 품고 가꿀 수 있기에 아픔을 참아 내면서 忘却(망각)이란 帳幕(장막)이 痤(멍)든 내 가슴속에 둘러쳐지면 새롭게 시작하려는 엉켜버린 삶에 소망들이 새록새록 피어올라 건강한 새싹 틔워내어 향이 가득한 꽃 한 송이 피워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아픈 과거 그만 뒤 돌아보고 부정하지도 말고 주어진 運命(운명)에 순응하면서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긍정하고 우리네 삶은 運命(운명) 이란 외줄 위를 떨어질 듯 뒤뚱거리며 조심스럽고 외롭게 걸어가면서 癰弄(희롱)이란 시간 속을 한 발 한 발 내 딛는 발 길속에 움켜쥐려고 바동거렸던 모든 것들을 허탈하게 빈손으로 끝맺는 것이 덧없는 인생살이라고 깨달을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었지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타고난 성품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이겨내려고 발버둥 쳐 왔던 아픔으로 스스로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초한 환경에 절망하며 살아오면서 양심에 흠집 없이 살아왔다고 내가 낳은 자식도 속일 수 있겠지만 내 자신의 양심과 하나님만은 속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마음속에 선과 악이 너무도 뚜렷하게 공존하는 갈등 속에 도덕과 윤리 가슴에 세기고 그 양심에 흠집 내지 않고 살아가려고 무던히도 힘겨웠던 날들 때로는 상담을 통해 때로는 신앙생활로 주어진 환경 한 번도 원망해 본적 없었지만 늘 자학하느라 많이도 힘겨웠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잘 참고 잘 견뎌 왔다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삶에 지처 생을 포기하려고 7곱 번이나 시도했던 일들로 주변에 많은 분들에게 상처 준 일이 몇 번이더냐 삶의 반환점을 돌아선 지천명 남은 생에도 힘겨움에 지쳐 선과 악의 갈등 속에 살아간다 해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 어리석음으로 내 남은 생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다짐해 보면서 혼란스러운 보신각 60갑자 길 떠나는 제야의 종소리 울려 퍼지는 여울 속에 작지만 소박한 소망과 의지를 싫어 창공으로 띄워 보낸다.

 

댁내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가 무탈함에 감사하고 평안함 속에서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 소원성취 하시어 한 푼 두 푼 살뜰하게 모아가는 아내의 고귀한 정성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가는 댁내 꿈 동이 아이들 꿈이 영그는 소리에 감사하고 부모형제 일가친척들 무탈함에 감사할 수 있는 날들 따뜻한 미소가 하나둘 쌓여져 함박웃음 짖는 일들만 함께 하시기를 임들과 함께 소망하면서 소망이 영그는 己丑年(기축 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리며 신의 가호 속에 소망이 영그는 새해 되십시오, 幸福한 梁南石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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