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부부가수 정태춘·박은옥
함께 음악하기 시작한 1979년 기점으로 올해 40주년
예술인들 기념사업추진위 꾸려 앨범, 공연, 전시 열어
“시장 반응 없어 10집 이후 더 이상 음반 낼 생각 없어…
시장이 모든 걸 장악한 세상, 시장 밖에서 소통하고 싶다”
함께 음악하기 시작한 1979년 기점으로 올해 40주년
예술인들 기념사업추진위 꾸려 앨범, 공연, 전시 열어
“시장 반응 없어 10집 이후 더 이상 음반 낼 생각 없어…
시장이 모든 걸 장악한 세상, 시장 밖에서 소통하고 싶다”
정태춘(오른쪽)·박은옥 부부가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고 있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저는 40년 동안 목소리로 표현해왔습니다. 정태춘씨가 곡을 만들고 글 쓰는 걸 옆에서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닫고 절망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음악 없는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노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박은옥)
자신의 삶에 있어 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태춘·박은옥 부부는 이렇게 답했다.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1978년 <시인의 마을>로 데뷔한 정씨와 이듬해 <회상>으로 데뷔한 박씨는 198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박씨 데뷔 시점인 1979년을 기준 삼아 올해를 부부의 데뷔 40돌로 잡고 여러 기념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계 전반을 망라하는 144명이 ‘정태춘·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정태춘씨가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정씨의 빛나는 성취 중 하나는 가요 사전심의제 폐지다. 그는 7집 <아, 대한민국…>(1990)을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제작해 내놓았다. 이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고,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정씨는 “<아, 대한민국…>은 저항하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이나 계획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 안의 분노에서 나온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방탄소년단 소속사의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 졸업 축사에서 ‘이렇게 되기까지 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고 정태춘씨를 생각했다. 사전심의에 맞서 혼자 외롭게 싸운 6년간 정태춘씨가 가장 안돼 보이고 안쓰러워 보였다. 지금은 정태춘씨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은옥씨가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고 있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정씨는 시장의 문제점을 힘주어 말했다. “이젠 시장이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시장에서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깁니다. 40주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모인 사람들끼리 시장 밖에서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하지 않고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문화, 시장 밖 예술이란 화두를 얘기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