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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장애인복지·아동복지, 서로 ‘네 책임’ 핑퐁게임만”

행복 한 삶 2018. 5. 5. 13:14
[커버스토리]“장애인복지·아동복지, 서로 ‘네 책임’ 핑퐁게임만”

ㆍ어린이날 기획 ② 장애아동 학대 방치

학대를 당한 장애아동은 아이의 특성에 맞는 전문적 상담과 치료,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런 시설이나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학대 장애아동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지체장애 특수학교에서 체육수업을 받고 있는 장애아동의 모습. 정지윤 기자

학대를 당한 장애아동은 아이의 특성에 맞는 전문적 상담과 치료,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런 시설이나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학대 장애아동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지체장애 특수학교에서 체육수업을 받고 있는 장애아동의 모습. 정지윤 기자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 

“아동이면서 장애인인 경우 몇 제곱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 같아요. 드러난 장애아동 학대는 빙산의 일각일 거예요. 실제로는 10배 이상 되지 않을까요. 여태껏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너무 심각하고 방치돼 있거든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서해정 부연구위원을 만났다. 서 연구위원은 2016년 발간된 ‘학대 피해 장애아동 서비스 지원체계 마련 연구 보고서’의 책임연구를 맡았다.


장애인개발원 건물에는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 지원센터도 함께 있었다.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통틀어 발달장애라고 해요. 장애아동센터도 겸하게 돼 있지만 사실상 성인 발달장애인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요.” 서 연구위원이 지원센터 문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운뎃점 앞에 어정쩡하게 쓰여 있는 ‘장애아동’이란 단어가 소외되고 방치된 장애아동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서 연구위원은 “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나라의 책임이다. 아동 가운데 가장 힘든 학대 장애아동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하지만 현실은 최하위”라고 말했다. 


전체 장애인 중 아동 비중 3% 
적은 수로 목소리 낼 곳 없어
친부모 55%·형제 38% 가해 
학대 계속되면 장애 더 심각
보호 위한 별도 시설 마련해 
치료·교육으로 자립 도와야
장애아동 학대 전수조사를

 

- 장애아동 학대가 빙산의 일각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드러나지 않은 학대가 더 많을 것이다. 외국 장애아동 학대 통계를 보면 국내 건수의 5~10배는 된다. 국내 학대 장애아동 가운데 33%가 매일 학대를 당한다. 매일 맞으면서 신체적·정서적 방임을 당한다. 가정 밖을 나가도 문제다. 학교에 가면 또래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을 들춰내기가 너무 어렵다.” 


- 장애아동 학대의 특수성이 있을까. 

“장기간 지속적으로 학대에 노출된다. 요즘 비장애아동은 똑똑해서 뭐가 학대인지 알고 스스로 신고도 많이 한다. 하지만 장애아동은 학대와 방임, 언어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어 무엇이 학대인지도 모른다. 굶기고 때리는 것만 학대라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방임도 명백한 학대다. 장애아동은 ‘넌 바보야’ ‘네가 뭘 할 줄 알아’와 같은 말을 들으며 무기력하게 자란다.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보호받고 잘 발달할 수 있도록 지원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학대다. 학대 가해자는 친부모뿐 아니라 형제가 많다는 것도 특성이다. 친부모가 55%, 형제가 38%가량 된다. 비장애 형제가 ‘너 때문에 내가 피해 본다’는 생각에 괴롭히는 것이다.” 


- 학대받는 장애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장애아동의 경우 비장애아동과 달리 학대를 당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시설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1단계’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설을 몇 개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평생 시설에만 가둬놓을 수는 없지 않나. 치료·교육과 함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우리는 기본도 안돼 있는 상황이다.”


- 학대와 방임 속에 장애와 문제행동이 더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학대와 장애가 중복되면 치료가 쉽지 않다. 시설에 들어간 아이들이 불을 지르거나 다른 아이들을 때리거나 해서 쫓겨나는 경우도 많다. 장애아동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 장애아동 심리치료 전문가도 별로 없다. 발달장애아동은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니, 비언어적 표현을 이해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그런 전문가들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의 도전적 행동이 왜 나왔는지를 봐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전문가가 상담하고 치료를 하면 도전적 성향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학대와 폭력에 노출되면서 문제행동이 심각해지고 병원에 가둬놓고, 또 집으로 돌아와 맞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오히려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 외국의 경우 장애아동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개입하는가. 

[커버스토리]“장애인복지·아동복지, 서로 ‘네 책임’ 핑퐁게임만”

“유럽 국가의 경우 장애아동이 등록되면 전문기관에서 주기적으로 선생님을 보내 아이들을 관찰하고 부모도 교육한다. 학대 초기에 개입해 가정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한다. 지역사회에서 아이를 두고 사례 회의를 하면서 아이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돕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다. 한 상담사가 말했다. 다시 한번 학대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그래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개입을 할 수 있다고.”


- 학대 장애아동이 방치되는 이유는 . 

“장애인복지와 아동복지 양쪽에서 서로 핑퐁게임처럼 책임을 전가하면서 사실상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 전체 장애인 가운데 장애아동 비율이 3%밖에 안된다. 장애아동 수가 적으니 장애인 쪽에서도 아동 문제는 소외되는 것이다. 장애아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없다.”


- 장애아동을 돌볼 수 있는 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인권과 학대에 대해 교육을 받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은 투자 대비 성과가 가장 좋은 일이다. 아이들이 학대받고 오갈 곳이 없거나, 시설에서 평생을 보내게 하는 대신 초기에 아이들을 잘 키워내면 아이들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성인이 되면 컨트롤하기가 아주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아이들 특성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부모가 하지 못한다면 국가에서 아이들 수준에 맞게 지원해야 한다.”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이 방치되는 학대 장애아동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이 방치되는 학대 장애아동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 연구위원은 장애아동 학대에 대한 전수조사로 우선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노동력 착취 및 학대가 끊이지 않자 발달장애인 학대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18~70세 장애인을 대상으로 해 아동은 제외됐다. 서 연구위원은 “학대 장애아동은 보이지 않는 존재다. 정치가 가시성을 좋아하는데 이건 표가 안 난다. 하지만 진정한 복지는 보이지 않게 스며드는 복지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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