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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박학다설] 어린이날의 유래

행복 한 삶 2018. 5. 8. 18:01

서해성의 박학다설] 어린이날의 유래

조주연 기자 기사입력 2018-05-04 22:14

출처 :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5&seq_800=10278887

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5. 4.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서해성의 박학다설] 어린이날의 유래

▶ 김종배 : 우리시대의 지식광대입니다.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지난주에는 저희가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한 주 쉬었는데, 많은 분들이 아쉽다고 정말로, 모든 시선이 남북정상회담에 쏠려있는 그 와중에도 박학다설을 기다렸다는, 너무 좋아하세요.

▷ 서해성 : 네. 즐겁게 재미있는, 지식이 재미있다는 것, 좋은 지식은 일종의 식량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김종배 : 맞아요. 그래서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7737님이 서해성이다, 이렇게 보내주셨네요.

▷ 서해성 : 고맙습니다.

▶ 김종배 : 오늘 어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서해성 : 내일이 5월 5일이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어린이날.

▷ 서해성 : 네.

▶ 김종배 : 어린이날 이야기입니까?

▷ 서해성 : 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이날이 과연 진짜 어린이날의 가치에 맞는가 하는 그런 얘기를 짚어볼까 하는 겁니다. 오늘날 어린이날 얘기하면 주로 상업화된, 상품화된 어린이날만 얘기하는데,

▶ 김종배 : 지금 완구, 장난감 난리가 나겠죠.

▷ 서해성 : 부모님을 오늘 저녁에 등쌀 좀 괴롭히는 그런 날이겠죠. 그런데 실제로 어린이날은 그런 정신에서 나온 건 전혀 아니었거든요. 그 얘기를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어린이라고 하는 이 말부터 한 번 알아봐야, 어린이라는 단어는 언제 출현한 거예요?

▷ 서해성 : 흔히 이제 우리가 어렸을 적에, 학교 다닐 적에 배울 적에는 방정환 선생께서,

▶ 김종배 : 소파 방정환.

▷ 서해성 : 네.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말도 처음 사용했다.

▶ 김종배 : 저도 그렇게 배웠는데 학교 다닐 때,

▷ 서해성 : 네. 제가 여기 오면서 확인해봤는데 조선왕조실록만 검색해도 금방 나오더라고요.

▶ 김종배 : 잠깐만요. 조선왕조실록에도 어린이라는 단어가 나온다고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일찍부터 어린이라는 말은 사용했다.

▶ 김종배 : 그러면 방정환 선생이 만든 말이 아니에요?

▷ 서해성 : 네. 그건 아닌 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날이 생기기 전에도 이미 동아일보를 검색해 봐도, 과거 신문을 얘기하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제가 검색을 못해봤고요. 동아일보 검색해봤는데 거기에도 어린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린이라는 말은 우리가 어린이날이라고 하는 그런 의례적인 말로 붙이게 된 것은 1992년도이지만 그 이전에도 어린이라는 말은 사용되고 있었다라는 거고, 또 실제로는 여성들에게 어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제법 있더라고요, 찾아보니까. 김어린이,

▶ 김종배 : 진짜?

▷ 서해성 : 네. 과거에 여성들에게 이름을 잘 이렇게 품격 있게 붙이지 않던 여성 비하하던 그런 시대에,

▶ 김종배 : 언년이, 사월이, 딱 이런,

▷ 서해성 : 그렇죠. 있더라고요. 그렇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방정환 선생이 천도교 대표이셨던 손병희 선생의 셋째 따님과 혼인하신 사위거든요.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네. 왜 이 말을 제가 하냐면요, 방정환 선생이 당시 도쿄에 유학 가있을 때도 <개벽>지에 특파원 형식으로 가있었거든요.

▶ 김종배 : <개벽>지 진짜 오랜만에, 교과서 때 배운,

▷ 서해성 : 그렇죠. 그런데 바로 그 얘기인데 <개벽>이 바로 천도교에서 발행하던 잡지입니다. 어린이라는 잡지도 천도교에서 발행한 잡지입니다. 제가 종교를 옹호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요. 이게 동학세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3.1운동도 실제로는 동학세력이 일으켰지 않습니까?

▶ 김종배 : 그렇죠. 주도한 게 동학이었죠.

▷ 서해성 : 그런 것처럼 이런 것들도, 어린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기본적으로 그런 데에서 나왔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동학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있게 정말 시간이 있으실 때 한 번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라고 얘기를 했고요. 그러니까 해월 선생,

▶ 김종배 : 최시형 선생.

▷ 서해성 : 해월 최시형 선생께서 이런 말씀하셨어요.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함부로 치지 말고 울리지 마라, 이렇게 했는데 그분의 바로 제자격인 사람들이 어린이날을 만든 김기전, 방정환, 이런 분들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고요. 사실은 초기 어린이날을 만들고 나중에 해방된 뒤에 어린이날을 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김기전이라는 분입니다.

▶ 김종배 : 그래요? 이분은 어떤 분이에요?

▷ 서해성 : 이분 아주 훌륭하신 분인데, 그러니까 1922년도에 천도교소년회를 만들어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했던 사람입니다.

▶ 김종배 : 이때는 5월 1일이었군요?

▷ 서해성 : 네. 5월 1일이었습니다. 조금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년운동의 선언이라고 하는 일종의 어린이날에 관한 테제, 어린이에 관한 테제를 쓰신 분이죠. 그런데 이분이 어떻게 하다보니까, 우리가 분단체제라는 게 참 그렇지 않습니까? 이분이 월북했다기보다 북에 계셨어요. 그러면서 실종이 되었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원래 어린이날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의 반쪽만을 계승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이분들이 했던, 지금 우리가 들어봐도 굉장히 진보적인 소년운동이었거든요. 어린이운동이었는데 그분들이 북으로 가서, 초기에 상당기간동안 어린이운동을 주도했던 분들이 실제 북에 체류하거나 북으로 갔습니다. 그게 원래 어린이날이 갖고 있던 어떤 의미의 부분을 반감시키게 되는 그런 측면이 있었다는,

▶ 김종배 : 지금 말씀하시니까 저 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배운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여기서 소년이 등장을 하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이 맥락은 어떻게 읽어야 되는 겁니까?

▷ 서해성 : 그때도, 우선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말뜻을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고 살거든요.

▶ 김종배 : 저번에 한 번 말씀해 주신 적 있어요.

▷ 서해성 : 그렇죠. ‘바다가 소년에게’인데 그때도 소년이라는 말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말하고 많이 달랐다는 점을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연령대가 달랐습니다.

▶ 김종배 : 어떻게요?

▷ 서해성 : 어린이운동 때도 대개 만 6세에서 길게는 만 19세까지를 소년으로 잡았습니다.

▶ 김종배 : 19세까지였어요?

▷ 서해성 : 네. 작게 잡은 데는 16세, 왜냐하면 일제강점기도 소년운동이 굉장히 활발했습니다.

▶ 김종배 :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집에 있는 애들 중학교 딱 들어가는 순간 너는 어린이 아니니까 이제부터 뭐 받을 생각하지 마, 딱 끊었는데 19살까지였어요?

▷ 서해성 : 네. 세대분화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의 사회적인 장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선 장수를 해야 됩니다.

▶ 김종배 : 그렇지. 맞아요.

▷ 서해성 : 1910년도쯤에 한국의 평균연령이 대략 30세 전후였거든요.

▶ 김종배 : 그렇게 낮았어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세대분화가 거의 없었고, 또 하나는 우선 장수를 해야 되고, 두 번째는 그 세대에 적절하게 상품공략을 할 수 있어야 세대가 나뉩니다. 어린이용 따로 있고, 유아용 따로 있고, 영아용 따로 있고, 어린이도 사실 얼마나 많이 분화됩니까? 우리 어렸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죠. 그냥 어린이에서 바로 어른이 되었던 거거든요. 바로 그 시대는 그런 걸 반영하는 거고요. 또 하나는 그 당시 소년개념, 어린이개념을 주목했던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꼭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그 봉건적 인습으로부터, 노동착취로부터 어린이들을, 청년들을 해방시키는 일,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전적인 어린이 의미이죠. 또 하나는 사실은 그 당시의 소년, 최남선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 소년의 개념은 사실 세대적 전망이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앞전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세대인 거예요. 이 사람들은 일종의 조금 자격이 없는 거예요, 윤리적으로 보면. 그런데 어린이들은 나라를 잃어버리는데 무슨 일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세대적 전망이 깨끗한 거예요.

▶ 김종배 : 나라를 새로 세울 수 있는 동량이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소년운동이 일제시대 때 광범하게 일어났던 겁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어린이날도 만들고 여기 주목했던 맥락이 거기에 있는 거군요.

▷ 서해성 : 거기에 있는 겁니다. 세대적 전망이었다는 겁니다. 세대적 전망, 그 부분을 우리가 놓치면 안 되고요. 그러니까 1919년 이후에 어린이운동이 활발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1운동을 할 때 실제로 많은 어린이들이 3.1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어린이학생들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말하자면 선민적 의식이 있었습니다.

▶ 김종배 : 아니. 그 유관순 누나가 그때 16살인가 그렇지 않았나?

▷ 서해성 : 그렇죠. 누나라고 그러면 안 됩니다.

▶ 김종배 : 저 학교 다닐 때 유관순 누나라고 해서,

▷ 서해성 : 그러니까 그게 남성중심적인,

▶ 김종배 : 한 마디 했다가 또 혼나네.

▷ 서해성 : 유관순 언니, 언니는 남자, 여자 다 쓰는 말이거든요.

▶ 김종배 : 그렇다면서요?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꺽정이 언니, 임꺽정 읽어보면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 김종배 : 네. 잘못했어요.

▷ 서해성 : 얘기가 지금 다른 데로 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 어린이날에 그 당시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운동을 하려고 그랬고 하는가, 그 점을 말씀드리는 거고 그 중심에는 3.1운동이라고 하는 정말 거대한 민족운동이 있었다. 그것이 이렇게 됐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김종배 : 날짜를 잠깐 얘기할게요. 아까 5월 1일이라고 했잖아요, 5일이 아니라?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애초에 5월 1일로 정했던 것은 1922년입니다. 그런데 제1회 어린이날은 1923년입니다.

▶ 김종배 : 제정은 22년에 하고?

▷ 서해성 : 22년도에 행사를 했어요. 그리고 23년도에도 행사를 했어요. 그런데 뭐냐면 그때 앞전에 했던 건 천도교소년회가 한 거예요. 그때는 이제 23년에는 막 많은 단체들이 모여가지고 제1회 어린이날이라고 정한 겁니다.

▶ 김종배 : 범국민적?

▷ 서해성 : 말하자면 범민족적으로 정한 겁니다. 그러니까 22년에 있었던 것이 기산하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가능했던 건데, 우리 역사로 보자면 제2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분들이 정례화 한다는 차원에서 그날을 제1회라고 부르기는 했습니다만 그런데 그 당시에 어린이날을 상당수의 사람들은 소년메이데이라고 불렀습니다.

▶ 김종배 : 그렇게 불렀어요?

▷ 서해성 : 네. 놀랍죠? 메이데이라는 말이죠, 메이데이. 노동절, 왜냐하면 5월 1일 날 했기 때문이죠.

▶ 김종배 : 그렇죠. 5월 1일이 메이데이니까,

▷ 서해성 : 네. 그런데 실은 애초부터 그 메이데이를 노리고 한 측면이 있습니다.

▶ 김종배 : 일부러?

▷ 서해성 : 네. 무슨 얘기냐면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소년들이 뭘 하고 있었습니까? 공부를 했을까요, 일하고 있었을까요?

▶ 김종배 : 일하고 있었죠.

▷ 서해성 : 일하고 있었죠. 바로 그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년 봉건적인 인습으로부터 소년의 해방도 있었지만 노동문제에 관해서 유소년 노동의 금지를 포함하는 그런 것들의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메이데이에서 바로 5월 1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 김종배 : 여러 가지 뜻이 거기에 있군요.

▷ 서해성 :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보호하는 사람으로서, 선물을 갖다 안기는 대상으로서 어린이였다기보다는 청년일꾼의 예비청년일꾼을 길러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런 거였습니다. 사실은 민족운동의 뿌리, 동량, 이렇게 봤던 것입니다, 어린이들을요.

▶ 김종배 : 지금의 의미하고는 완전히 다른데요? 상당부분이 다른 거죠. 오히려 그때는 어린이를 주체로 세우기 위한,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역사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 서해성 : 어린이운동은 역사주체운동입니다. 그런데 이게 해방이 되고 나서 이게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지금 그런 의미였다고 한다면 소년단체나 이런 것도 그러면 많이 만들어졌겠네요?

▷ 서해성 : 소년단체는 수백 개가 생겼습니다. 그 당시에 지금 우리가 알다시피 이런 SNS 같은 것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고 그랬는데 정말 많은 소년단체들이 많이 생겼고요. 200여개 이상이 되는 단체가 전국에서, 지자체별로 하나씩 있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많은 소년단체가 생겼다는 말씀을, 그것이 왜 그럼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걸 같이 생각해보자는 얘기입니다. 22년도에 어린이날을 처음 만들었을 때 뿌린 유인물 이름이 뭐였냐면요, ‘10년 후에 조선을 생각하라’였습니다.

▶ 김종배 : 미래에 대한 투자군요.

▷ 서해성 : 이게 운동권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린이운동이 이념적이었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린이운동 그러면 천사주의, 애들은 착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된다, 이런 식 사고를 하지 않습니까? 그 당시 이 사람들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10년 후에 조선의 민족해방을 이끌 사람이라는 그 뒤의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이 사람들이 그 중심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 김종배 : 어린이날의 제정 의미가 여기에 있었군요.

▷ 서해성 : 네. 그런 것을 같이 생각을, 애초에 소년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씀을 제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5월 1일 날 왜 메이데이와 관련되어서 이걸 했는가 하는 걸 찾아보면 23년도 5월 1일자 <개벽>지에, <개벽> 25호에 실린 거기에 보면 어린이날을 왜 메이데이 했는가, 명료하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5월 1일 이 날이 전 세계 무산대중에게 얼마나 의미 있게 기념되는 날인가를 생각하며,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예.

▶ 김종배 : 무산대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군요.

▷ 서해성 : 그러면서 어린이날의 설정과 그에 따라 일어난 소년운동이라 하겠다. 이게 그 당시 <개벽>지 5월 1일 날 실린 거예요. 그러니까 잡지가 5월 1일 날 나오면 이게 3월 달에 글을 썼고, 4월 달에 인쇄했을 것 아니겠습니까?

▶ 김종배 : 그렇겠죠, 당연히.

▷ 서해성 : 충분히 생각을 하고, 그리고 어린이가 갖고 있는 당시 의미는 단지 보호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 중심주체를 세우는, 나아가서는 민족해방의 주체를 세우는 중요한 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러면 실제로 소년운동, 이런 것도 많이 나타났습니까?

▷ 서해성 : 전국에 아까 말씀드렸는데 최소 220여개 이상의,

▶ 김종배 : 단체가 만들어졌고,

▷ 서해성 : 단체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종교분야에서, 거의 모든 종교기관에서 소년부를 운영했고요. 그리고 23년이 되면 이미 보이스카우트가 한국에 나옵니다. 그 당시 이름이 뭐냐면 소년척후대였습니다.

▶ 김종배 : 척후대? 척후는 군사용어,

▷ 서해성 : 보이스카우트가 원래 군대에서 나온 거니까요.

▶ 김종배 : 척후병, 이럴 때의 척후.

▷ 서해성 : 보이스카우트가 원래 소년스파이에서 나온 거니까요.

▶ 김종배 : 그런 건가요?

▷ 서해성 : 네. 원래 보이스카우트 자체가,

▶ 김종배 : 그것도 처음 들어요, 저는. 보이스카우트가 소년스파이라는 거기서 나온 거예요?

▷ 서해성 : 네. 적이 의심을 안 하지 않습니까, 소년이 가서 움직이고 있으면?

▶ 김종배 : 그렇죠.

▷ 서해성 : 그 용도로 애초에 보이스카우트가 출현했던 겁니다.

▶ 김종배 : 보이스카우트를 만들게 된 게?

▷ 서해성 : 네. 그러니까 사실 보이스카우트 운동이 정말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요.

▶ 김종배 : 어린이스파이 양성하려고 시작한 거예요?

▷ 서해성 : 그런 역사를 가지고 출발한 거죠. 그리고 그런가 하면 조선소년군도 만들어졌습니다. 총을 들었다는 게 아니라 보이스카우트에 대응해서 또 하나의 조직이 생겼는데 조선소년군이라고 하는 것도 만들었습니다, 23년도쯤 되면. 그러니까 전국에 숫자도 많았고 다양한 형태의 소년운동이 널리 있었다. 여기서 말씀드릴 게 여러분, 소년운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소녀를 뺀 운동이 아닙니다.

▶ 김종배 : 그렇죠. 보통 청년이라고 해서 여성을 빼는 게 아니죠.

▷ 서해성 : 네. 그 뜻은 아닙니다. 소년소녀운동이라고 그 당시 그렇게 말했고 통칭해서 소년운동이라고 그랬단 겁니다. 어린이에 남녀가 없는 것처럼, 그래도 아무래도 남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 김종배 : 그러면 날짜가 5월 1일에서 5월 5일로 바뀐 건 언제에요?

▷ 서해성 : 5월 5일로 바뀌게 된 것은, 정례화 되게 된 것은 46년도입니다.

▶ 김종배 : 해방 후에?

▷ 서해성 : 네. 45년도에는 어린이날이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일제가 어린이날을 금지했기 때문에 38년도가 되면 어린이날을 셀 수가 없게 됩니다.

▶ 김종배 : 그때부터 금지했습니까?

▷ 서해성 : 중일전쟁을 하면서부터 전국에 있는 소년단을 다 해체하죠. 강제로 해체시키고 그렇게 합니다만 그 마침 1937년도에 있었던 어린이날이 여차여차 무슨 일로 생겨서 5월 5일에 하게 된 겁니다.

▶ 김종배 : 우연히?

▷ 서해성 : 날짜가 안 맞고,

▶ 김종배 : 사정이 있어가지고,

▷ 서해성 : 네. 그러면서 이제 그 어린이날로 해가지고 해방이 되고 나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하자, 이렇게 결정이 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제가 여러 가지 설을 다 무시하고, 다 소개하면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개인이 했다는 주장도 있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타당하지 않은 것 같고, 또 분단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가버리거나,

▶ 김종배 : 그러면 5월 5일로 굳어진 어떤 정확한 기록이나 이런 건 없는 거네요?

▷ 서해성 : 명료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현재 근거로 봤을 적에는 일제강점기에 마지막으로 했던 어린이날이 5월 5일 날 한 건 틀림없습니다.

▶ 김종배 : 37년.

▷ 서해성 : 네. 하물며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 김종배 : 어떤?

▷ 서해성 : 5월 1일이 메이데이를 기점으로 했는데 5월 5일 해방되고 나서 바뀐 것은 당시 어린이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좌파들이었는데, 해방이 되고 나서, 했는데 마르크스 생일이 5월 5일이기 때문에 그날로 정했다.

▶ 김종배 : 진짜 맞아요. 올해가 200주년이라면서요?

▷ 서해성 : 네. 마르크스가 5월 5일에 태어났습니다.

▶ 김종배 : 맞아요. 신문에서 봤어요.

▷ 서해성 : 보셨군요. 그런 주장까지 하물며 있긴 합니다. 그 말은 무슨 얘기냐면,

▶ 김종배 : 그건 정말 썰인데, 지어낸 것 같은데,

▷ 서해성 : 네. 그런데 왜 이 말이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내용이냐면요, 사실 20년대 후반부터 어린이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진보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것이 그건데, 가령 방정환 선생은 31년도에 돌아가시거든요. 청년으로 세상을 떠나는 거죠.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어린이운동 그러면 방정환을 떠올리거든요. 그 이유가 뭐냐면 사실은 어린이 초기운동을 했던 사람은, 어린이날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김기전이라는 사람입니다. 명백합니다. 이건 사실이고, 방정환 선생님 23년도에 일본 유학생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 당시에 일본에 있었다?

▷ 서해성 : 네. 그 이듬해에도 일본 유학생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23년도에 우리가 제1회 어린이날을 할 때에도 일본 유학생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초기 어린이운동을 주도할 수 없었고요. 그러고 나서 1930년대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1899년생인가 그래요, 방정환 선생. 그렇게 된다면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의 긴 역사에서 보면 그렇게 다른 분들이 기여도가 더 높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 김종배 : 그런데 왜 어린이날 하면 우리는 다 뇌리에 소파 방정환, 이렇게 딱 입력,

▷ 서해성 : 그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그때 어린이운동을 주도했던 분들이 북에 잔류했거나 내지는 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의 공적을 여기에 기록할 수가 없게 된 거예요.

▶ 김종배 : 그 사람들은 역사에서 지워버렸으니까,

▷ 서해성 : 분단체제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사실 어린이운동, 소년운동의 역사에는 현재 이것은 분단체제의 기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런 사정이 또 있었군요.

▷ 서해성 : 그러니까 가령 우리가 부르고 있는 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사실 그것도 애초에 작곡했던 사람은 안기영이라는 사람이 작곡을 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 양반이 북으로 월북해요. 그러니까 그걸 다시 바꾸기 위해서 윤석중 선생에게 작곡을 맡기는 거거든요.

▶ 김종배 : 그래요?

▷ 서해성 : 네. 이런 것처럼 거의 모든 어린이운동에도 분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렇지 않은 한쪽의 어린이날만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진보주의자들이 주도했던 어린이날, 아까 말씀드린 게 바로 애초에 출발할 때부터 어떻습니까? 메이데이로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로 봤을 적에 처음부터 상당부분, 그런데 그럼 왜 그랬느냐? 3.1운동 이후에 지식인운동의 중심이 어디 있었냐면 다 알다시피 사실은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었거든요. 또 사회주의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있었거든요.

▶ 김종배 : 좌파.

▷ 서해성 : 좌파들에게 있었거든요. 그리고 26년도쯤 되면 사회주의자들이 한국 전체 운동권, 요즘말로 운동을 완전 장악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 김종배 :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민족운동도 분열이 되잖아요, 이념에 따라 좌파, 우파로. 그럼 어린이운동도 그랬나요?

▷ 서해성 : 어린이운동도 중간에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게 분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좌파들이 했던 운동조직이 오월회라고 하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오올.

▶ 김종배 : 우울?

▷ 서해성 : 오월, 어린이날, 그 말이죠. 어린이해다, 그 말이죠. 어린이날이 5월에 있으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하고 민족계열이 했던 어린이운동하고 일정이 부딪힙니다. 26년도가 되면 순종황제가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그때 그 국상일이 바로 6월 10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린이날, 국상은 길지 않습니까? 국상이 긴데 우리가 어린이날 할 수 있냐 하는 문제가 이제 생기게 됩니다.

▶ 김종배 : 상중인데,

▷ 서해성 : 네. 그래서 그런데 오월회, 아까 말했던 좌파세력은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행사를 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처럼 분열이 일어나는 거죠. 27년도에도 5월 1일 날 하필이면 또 비가 왔어요. 그래서 5월 3일 날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 행사를 따로따로 한 거예요. 민족계열과 좌파계열이 따로따로 하게 되고, 27년도에는 그 당시에 신간회가 결성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좌우익 결합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니까 다시 통합되어가지고 어린이날 같이 치르게 되는, 그래서 조선소년연합회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되는 건데 그 뒤에 조선소년연합회가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조선소년운동총동맹으로, 딱 들어봐도 좌파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그래서 30년대쯤 되면 완전히 어린이날 운동의 주도권이 그렇게 되고, 그 무렵에 방정환 선생은 소년운동에서 물러나고 또 실제로 천도교 전체가 방향을 전환하는 측면도 있고, 방정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그렇게 된 상황이죠.

▶ 김종배 : 그러면 지금의 어린이날 의미하고는 완전히 달랐던 거잖아요? 어린이를 역사의 주체로 세우자, 한 마디로 정리하면 대단한 이런 어떤 구상 속에서 어린이날을 제정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변질이 된 건가요?

▷ 서해성 : 오늘날 어린이날은 순수한 어린이날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김종배 : 순수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 서해성 : 점찍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실 소년들을 세계의 주체로 보느냐, 아니면 보호대상으로 보느냐는 세계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애초에 어린이날은 그 소년들, 성장세대를 세계의 중심 주체로 놓고 그들을 각성하는 날로 봤던 겁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나서 47년도부터, 사실은 일제시대부터 이미 이랬습니다. 23년도 우리가 어린이날을 하자 일본 조선총독부가 고궁을 개방합니다, 무료로.

▶ 김종배 : 그때부터 시작한 거예요?

▷ 서해성 : 이게 하루아침에 일어난 게 아닙니다.

▶ 김종배 : 어린이날 고궁 개방이 총독부에서 한 거예요?

▷ 서해성 : 무슨 얘기냐면 누가 봐도 운동권이 하는 거지 않습니까? 23년도 어린이날이, 그러니까 총독부는 전반대로 유희로 가는 겁니다.

▶ 김종배 : 맞불을 놨는데 성격을 완전 탈선을 시켜버리는,

▷ 서해성 : 네. 하지 말라고 그럴 수는 없으니까, 애들을 위해서 한다는데 그러겠습니까? 그리고는 이제 다른 한편에서는 우량아대회 같은 것을 엽니다.

▶ 김종배 : 진짜 저 어릴 때 진짜 우량아선발대회,

▷ 서해성 : 나가셨어요?

▶ 김종배 : 아니. 나간 게 아니라 분유회사에서 협찬하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지금도 흑백TV로 봤던 게,

▷ 서해성 : 그게 이미 그때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개념으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한, 주체운동에서 보호개념으로 전환하게 되고 그리고 유희의 놀이,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많이 안기는 나라가 없거든요, 어린이날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그게 무슨 얘기냐면 일제가 만들어놓은 유산을 해방된 뒤에 강화하는 것입니다.

▶ 김종배 : 이게 그러면 지금 어린이날의 이런 어떤 풍습과 문화가 결국은 일제의 잔재구만요, 이것도.

▷ 서해성 : 원래 우리 어린이날은 이런 게 없었죠, 제 얘기는요. 그런데 이걸 거꾸로 일본이 어린이날이 갖고 있는 주체의식을 강화하는 그런 날이 자기들은 저항개념으로 발전할 게 뻔하기 때문에 그걸 방향을 틀기 위해서 했던 것이 고궁을 개방하고 놀이동산을 불러내고 하는 그것들을 했던 거고, 거기에 온 아이들에게 추첨하고 또 뭡니까? 보물찾기, 이런 걸 시켜가지고 일본애들이 그렇게 끌고 갔던 거고, 그 어린이 중에서 약간 중산층 이상 아이들을 우량아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해서 다시 어머니들과 함께 같이 만들어내는, 제국주의 신체개념이 전형적인 것이 우량아대회거든요. 그러니까 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가는 것입니다.

▶ 김종배 : 5386님이 지금 문자로 질문 주셨는데, 일본도 어린이날은 5월 5일입니다. 무슨 연관이 있나요? 이렇게 질문을 주셨네요.

▷ 서해성 : 그거는 관계없습니다. 대개 어린이들 기념하는 날들이 5월에 몰려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습니다.

▶ 김종배 : 일설에 의하면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어린이한테 선물을 주고 3일 뒤에 돌려받는다, 농담이고요.

▷ 서해성 : 우리 어렸을 때 그런 말이 있었죠.

▶ 김종배 :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이게 그러니까 일제의 어떤 잔재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충격적인데,

▷ 서해성 : 그러니까 어린이날이 일제의 잔재라는 게 아니라,

▶ 김종배 : 그 문화.

▷ 서해성 : 어린이날을 왜곡하고 그리고 어린이가 갖고 있는 주체의식을 무너뜨리게 하려고 하는,

▶ 김종배 : 그러면 오늘 이 방송을 들으신 우리 부모님들이 어린이한테 가서 알고 봤더니 이게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왜곡시키려고 한 거니까 선물을 안 주겠노라, 선언을 하면,

▷ 서해성 :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죠.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이제 우리가 어린이날의 본래 갖고 있는 뜻을 잘 찾아볼까?

▶ 김종배 : 그렇지. 역시 작가님이셔.

▷ 서해성 : 그리고 가능하다면 박학다설 한 번 들어볼까? 녹음으로도 되니까,

▶ 김종배 : 이건 팟캐스트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니까, 박학다설만 딱 떼어가지고 내일 어린이하고 부모님이 같이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 서해성 : 그러면서 이것도 꼭 질문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어린이날은 이렇게 변하고 말았을까? 그러니까 지금은 어린이날이라는 것은 사실은, 지금 어린이날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상품공세에 부모님과 아이들이 같이,

▶ 김종배 : 장난감 회사에 1년 최대 대목이잖아요. 이게 문화가 뭔가 문제가 있긴 있어요.

▷ 서해성 : 이건 아닙니다. 적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요. 어린이날은 원래 어린이날이 갖고 있었던 정신을 오늘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오늘날 지니고 있는 어린이날의 과제는 어린이날을 어린이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어린이날은 지나치게 상품화된 그 안에 갇혀있다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초기에 어린이운동을 했던 분들이 얼마나 어린이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미래의 가치로 생각했고, 그리고 그 각성된 어린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주인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신념, 일제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것을 같이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종배 : 사실 어떤 보호의 대상으로서 어린이를 중시하는 것은 5월 5일만이 아니라 365일 해야 되는 거고,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어린이를 보호하는 게 나쁘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 김종배 : 그럼요. 이분이 지금 정리를 명쾌하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지금 tbs 앱으로 saipe2님이 주셨는데 ‘낡은 세계의 어른이 아니라 새싹인 아이들이 새 세상을 열라고 그랬죠’라고 정리를, 오늘 지금 작가님이 한 말씀 딱 정리를 해 주신 것 같습니다.

▷ 서해성 : 네. 김기전 선생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이날을 만들면서. 나무를 보라, 그 줄기의 뿌리의 전체는 오로지 그 적고 적은, 옛날 말 그대로 하겠습니다. 적고 적은 햇순 하나 떠받치고 있지 아니한가? 그 거대한 나무가 실제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작은 햇순 하나 떠받치고 있다는 겁니다.

▶ 김종배 : 그 햇순이 바로 어린이,

▷ 서해성 : 어린이라는 겁니다. 오늘은 바로 그 햇순 같은 어린이들과 어떻게 그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해봤는데요. 제가 이렇게 짚어본 이유는 원래 우리 어린이날이 갖고 있는 의미에 조금 더 도달하고자 하는 뜻이었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마무리하면서 인사 나누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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