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 하네” 삭발 ‘고수’ 노동자들이 바라본 야당의 ‘삭발 투쟁’
10일 이언주 의원 시작으로 정치권 ’조국 반대 릴레이 삭발’
삭발 4·5번 경험한 학비노조 고혜경 부위원장·한연임 지부장
릴레이 삭발 두고 "가지가지 한다" "정치적 쇼" 쓴소리
"삭발은 가진 것 없는 노동자 최후의 수단…국회의원은 쇼 대신 일해야"
삭발 4·5번 경험한 학비노조 고혜경 부위원장·한연임 지부장
릴레이 삭발 두고 "가지가지 한다" "정치적 쇼" 쓴소리
"삭발은 가진 것 없는 노동자 최후의 수단…국회의원은 쇼 대신 일해야"
최근 정치권에는 때 아닌 ’삭발 열풍’이 불었습니다. 지난 10일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한다며 머리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이어받아 ‘삭발 릴레이’를 벌였습니다. 제1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황교안 대표가 머리를 밀었고,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삭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결연한 표정의 황 대표 뒤로 일부 의원과 지지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의 삭발 릴레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삭발한 의원들의 ’결기’를 칭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편에선 삭발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대안정치연대 박지원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라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애초 삭발은 노동계에서 참다참다 못해 꺼내는 ’최후의 수단’으로 통했습니다. 이때문일까요? 노동계에서도 ’삭발 투쟁’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적잖습니다. 지난 19일 <한겨레>가 만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고혜경 수석부위원장과 한연임 광주지부장은 모두 “최근 정치권의 ’삭발 투쟁’은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2년 전 파업한 급식 노동자를 두고 “동네 밥하는 아줌마들" "미친 놈"이라고 막말을 해 논란이 됐던 이언주 의원의 삭발은 황당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언주 의원의 삭발이요?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저희 노동자들이 정말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전유물처럼 삭발단식을 했었던 거잖아요. 근데 국회의원이 이렇게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고혜경)
"정치적 쇼로 보여요. 우리들이 삭발 투쟁하는 건 비아냥거리면서 본인들은 마치 국민을 위하는 것마냥 삭발을 하는데, 내년 총선 때문에 하는 것으로밖에 생각이 안 되죠." (한연임)
또 두 사람은 "똑같이 삭발을 해도 국회의원과 노동자들의 절박함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급식노동자로 일하는 고 부위원장과 한 지부장은 각각 네번, 다섯번의 삭발을 경험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차별과 불합리가 삭발을 하게끔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의 삭발은 지난 6월17일 정규직 임금의 80% 및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열린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 삭발식’에서였습니다. "삭발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예뻐진다"며 웃을 정도로 수차례의 삭발을 통해 ’내공’이 단단히 쌓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삭발은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를 잘라주고, 취업준비생 자녀가 엄마의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어요."(한연임) "깎는 사람도, 깎이는 사람도 모두 울었어요. 삭발을 두번, 세번 계속 할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언제까지 비정규직으로밖에 살 수 없는지, 왜 해마다 우리는 이런 투쟁을 해야 하는지"(고혜경)
노동자가 국회의원한테 바라는 건 ’쇼’가 아닌 ’일’입니다. 한 지부장은 "삭발할 시간에 (불합리한) 사회 근본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국회에서 연구하며 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 부위원장은 "삭발한 의원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사망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제대로 일하지 않는 의원들 때문에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큰 화제를 모은 한국당의 릴레이 삭발은 지난 20일을 끝으로 잠정 중단됐습니다. 한국당 내에서만 원내·외 스무명가량이 삭발을 하면서 공천 눈도장 찍기라는 비판이 일자 당 지도부가 ’삭발 자제령’을 내렸기 때문인데요. 현재는 이학재 의원만이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이고, 간간이 당 지도부가 찾아와 "대통령이 사람 잡는다"며 위로를 건넬 뿐입니다.
과연 삭발 투쟁을 중단한 의원들은 국회로 돌아와 국민들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삭발 고수’ 노동자들이 국회의원을 향해 던지는 ’뼈 때리는 한마디’가 궁금하다면 영상을 클릭해주세요!
기획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촬영 전광준 기자
영상제공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