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집권 4년차, 2016년 11월 공개된 국정 교과서는 대한민국 수립 시기를 1948년(이승만 정부 수립)으로 명시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고 건국절 제정 법안을 제출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도 광복절 폐지 및 건국절 신설 법안을 냈다가 철회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분명히 명시된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했던 것이다.
자유한국당 역시 윤 후보를 영입하기 2년여 전인 2017년 8월 2일,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했다는 내용을 담은 혁신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최근까지도 자신이 지지하고 소속된 정당이 촉발했던 ‘건국절 논란’에 명확한 의견을 낸 적이 없다. “소모적인 논쟁”이라며 비껴서기만 했을 뿐이다.
저는 그 건국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소모적이라고 생각해요. … 언제 건국이 되었느냐로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2020.2.7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인터뷰
▲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다짐하며 쓴 선서문은 보물 568호로 지정돼 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윤주경 후보의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는 1932년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문에서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한다는 다짐을 자필로 남겼다. 그리고 작성 일자를 ‘대한민국 14년(大韓民國十四年)’이라고 썼다. 대한민국 원년을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윤 후보가 모르고 있을리 없는 사실이다.
“반민특위, 국민 분열” 나경원 발언: “그 부분 많이 생각 안해”
우리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거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또다시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정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현 통합당 서울 동작구을 국회의원 후보) / 2019.3.14 당 최고위원회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1948년 9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부역한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국회가 설치한 기구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비협조, 친일 경력 경찰의 특위 습격 등 노골적 방해 탓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듬해 10월 약 1년 만에 와해되고 만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친일 청산이 기약없이 미뤄지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런데 지난해 3월 14일,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 4천 737명을 다시 심사하겠다며 광복 후 좌익 활동 이력이 있는 298명을 포함한다고 발표하자 반발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은 문제의 발언 하루 만에 “반민특위 활동은 제대로 됐어야 한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영입에 응한 윤주경 후보는 같은 당 나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현재까지 확인된 답은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동형: 반민특위는 국민분열이다, 이런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윤주경: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저는 독립운동이 자랑스러운 역사고, 자긍심을 가질 역사라는 그런 면으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2020.2.7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인터뷰
▲ 미래한국당 윤주경 후보가 지난 9일 모 정당 미래통합당의 선거유세를 돕고 있다.
지난 9일, 통합당 후보로 동작을 지역구 선거유세에 나선 나 의원의 옆에는 윤 후보가 있었다. 윤 후보는 최근 당사 앞에서 한 언론사 기자에게 “나경원은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잘 몰라서…”라고 묻기도 했다. 질문을 받은 기자가 윤 후보에게 일본과 관련한 발언 등이 문제가 됐다고 예를 들어 설명해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뉴스타파 취재팀은 그 장면을 여러 사람과 함께 보고 들었다.
윤봉길 손녀, 끝내 ‘1919년 대한민국’을 입에 담지 않다
뉴스타파는 지난 2일 한국당 선대위와 윤주경 후보 본인에게 정식 인터뷰 요청 공문을 보냈다. 먼저 건국 등 역사적 쟁점 및 논란에 대해 묻고, 과거 공식 발언들에 대해 입장을 다시 확인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총선 투표를 1주일 앞둔 지난 8일을 시한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시간과 장소는 선대위와 후보자의 선택에 맡겼다.
취재팀은 “비례대표 1번 후보자는 누구보다도 각 당 정당정책을 대표함과 동시에 유권자와 언론 수용자들에게 책임 있는 답변을 제시할 의무가 있는 인물이므로 공공의 이익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당 선대위와 윤 후보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 후보는 같은 기간 지상파 3사 등 주요 TV와 라디오 채널 인터뷰에는 빠짐없이 출연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윤주경 후보의 생각을 정확히 듣기 위해 그를 직접 찾아나섰다. 지난 7일과 9일, 각각 당사와 선거유세 현장에서 윤 후보와 만났다. 그는 두 차례 모두 취재진을 피해 달아나듯 자리를 떠났다.
홍주환 기자: 후보님, 안녕하세요. 뉴스타파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답을 안 하셔서 찾아왔습니다. 윤주경: …
홍주환 기자: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서 비례대표 후보가 되셨는데 대한민국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서 한말씀해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윤주경: …
홍주환 기자: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인지, 48년인지. 윤봉길 의사께서 이렇게 선언문을 쓰시면서 1919년이라고 하셨는데 한말씀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후보님 명확하게 답해주시죠. 윤주경: …
지난 9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 선거유세 현장
언론이 특정 정치인의 역사관을 묻는 취재는 ‘사상검증’과는 범주가 다른 문제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상징성을 인정받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려는 후보에겐 더욱 그렇다.
독립운동가 김근수·전월선 지사의 아들인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김 회장은 “특정 정당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내세워 그 후손을 영입했을 때에는 국민들에게 그의 역사관을 명확하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정치세력들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일종의 장식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데, 이는 독립운동 정신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언론이 정치인의 역사관에 대한 검증 취재를 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거대 야당의 위성정당 비례대표 1번은 이미 국회의원직을 보장받은 자리다. 윤주경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두 가지 정책 약속을 내놨다. 독립기념관장 경험을 살려 21대 국회에서 독립운동 연구 기반을 튼튼히 하고, 국가유공자 예우를 선진화하겠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국회의원 후보 시절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그의 역사관이 차후 의정활동 속에서 어떤 법안들로 반영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점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