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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라틴어 수업 2020]코로나의 시간…현실의 천국과 지옥 가르는 것은 인간 존재의 태도다

행복 한 삶 2020. 4. 25. 07:38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 2020]코로나의 시간…현실의 천국과 지옥 가르는 것은 인간 존재의 태도다

한동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241635005&code=94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2_thumb&C#csidx54512a3e08e96cca5450c750e0a793a

(5) 천국과 지옥의 차이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른 아침 볼 수 있는 탁발 행렬. 신자들이 정성껏 마련한 양식으로 승려들의 빈 발우(바리때)를 채우면, 승려들은 이를 빈 바구니를 든 주민들과 나눈다. 마치 긴 숟가락으로 앞에 앉은 이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천국의 모습과 같이.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른 아침 볼 수 있는 탁발 행렬. 신자들이 정성껏 마련한 양식으로 승려들의 빈 발우(바리때)를 채우면, 승려들은 이를 빈 바구니를 든 주민들과 나눈다. 마치 긴 숟가락으로 앞에 앉은 이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천국의 모습과 같이.


코로나로 떠올린 중세의 재앙
‘더 나쁜 질병’ 뜻 담긴 페스트

인류 역사상 중세유럽에서 2000만명의 사망자를 냈던 흑사병은 가장 규모가 큰 재앙이었다. 흑사병은 ‘페스트(pest)’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나쁜’을 뜻하는 ‘말루스(malus)’의 비교급 형용사인 ‘더 나쁜’을 의미하는 ‘페유스(peius)’에서 유래한 단어로 추정된다. 라틴어 명사 ‘페스티스(pestis)’는 중세 인간이 경험한 다른 어떤 전염병이나 중대한 위험에 비해 ‘더 악한 질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흑사병을 가리켜 ‘전대미문의 질병’이라는 뜻으로 ‘인피르미타스 인아우디타(infirmitas inaudita)’라고 부르고 그로 인한 죽음을 ‘검은 죽음’ ‘흉한 죽음’이라는 뜻의 ‘아트라 모르스(atra mors)’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중세에는 “주여, 우리를 기근과 페스트, 전쟁에서 구하소서(A fame, peste et bello, libera nos, Domine)”라는 기도가 있을 정도였다.


페스트보다 치명률은 낮다 해도 코로나19는 페스트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불과 3개월 만에 이 바이러스는 대륙과 인종, 민족과 국가를 가리지 않으며 전 세계를 한꺼번에 두려움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기후변화나 지진, 태풍, 홍수, 가뭄 같은 천재(天災)와의 전쟁, 테러, 식량난 같은 인재(人災)는 언제든 인류를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코로나19는 그것을 뛰어넘었다. 전 세계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이 상황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하루에도 수백명씩 목숨을 잃는 상황은 그 자체로도 비극이지만, 죽음의 순간 인간의 존엄이 부재한 상황은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거리에 시신이 그대로 방치된 남아메리카의 어느 나라, 시신을 겹쳐 보관한 어느 병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전쟁에 비유하고 누군가는 지옥이 따로 없다고 말하고 있다.


돌봄 없는 죽음과 방치된 시신
세계서 벌어지고 있는 ‘지옥’

‘천국과 지옥’ 이야기가 필요한 인간

지금은 코로나19로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예루살렘은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그 가운데 예수의 부활과 성탄을 기리는 시기는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와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에서 보내려고 오기 때문에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마르타(Martha)’라는 여성의 생가가 있었다는 곳 근처였다. 또 옆에는 비교적 최근인 1903년에 세워진 ‘예수고난회’라는 수도원이 있다.


하루는 그곳에 초대를 받고 갔는데, 한창 내부 공사로 먼지가 날리긴 했지만 1900년대 초반의 책과 고문서들이 상당히 많은 수도원 도서관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책을 소개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잠시 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 바로 그 서가에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금방 내 눈에 들어왔다. ‘MCMLXVIII’라고 표기되어 있는 걸 보니 1968년, 무려 반세기 전에 출간된 책인데 편집과 디자인이 너무나 훌륭했다. 호기심이 생겨 그곳 공동체에 말씀드리고 책을 빌려서 숙소로 돌아왔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왜 종교는 천국과 지옥에 관해 이야기를 할까? 살아있는 인간 가운데 그 누구도 천국이나 지옥을 보거나 가본 사람은 없다. 물론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에 의해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사람은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종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한밤중에 숙소 옥상에서 멀리 보이는 유대 광야와 헤로데가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요새 헤로디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수없는 외세의 침공과 저항, 내부 계층 간의 갈등과 암투, 그 안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의한 자가 호의호식을 하고 정의로운 자가 억압과 핍박을 받는 현실 속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인간의 꿈이 번번이 미완으로 그칠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 좌절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 인간의 삶은 왜 이다지도 모순투성인지 그런 고민과 탄식의 끝에 부조리하고 불의한 인간사를 풀 길이 없고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에게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꼭 필요하지 않았을까.


만일 죽음 이후의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너무나 불공평한 현실 속에서 무력감만 느끼다가 허무하게 죽게 될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실은 이렇지만 내가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은 지금은 저렇게 호의호식해도 하늘의 심판으로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삶에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현실의 인간 존재에겐 천국과 지옥은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이고, 하늘나라는 위로와 희망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실제 이런 이야기는 적지 않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 쉐다곤 파고다의 풍경.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 쉐다곤 파고다의 풍경.


각 나라의 코로나 대처 방식서
한 사회를 천국 또는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인지 경험

단 한 가지가 다른 천국과 지옥

단테는 <신곡>에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탈리아나 유럽의 교회나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 가운데에도 천국과 지옥을 묘사해놓은 것을 보면 아주 감각적이면서도 때로 위협적인 것이 많았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모습은 반드시 과연 그래야 할까 하는 의문에 빠진다.


단테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영향을 받아 어린아이와 같이 무죄한 이가 가는 림보, 육욕, 폭식, 탐욕, 인색, 낭비, 분노, 이단, 폭력, 사기와 배신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지옥을 그려낸다. 그리고 지옥과 마찬가지로 천국에 들어가기에 앞서 영혼의 정화 장소인 연옥과 천국에 대해서도 계층을 나누어 상세히 묘사한다. 이것은 작가의 위대한 상상력과 이전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연옥, 지옥의 모습은 단테가 생각했던 것처럼 복잡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천국은 마냥 좋고 지옥이라고 마냥 나쁘지도 않다.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은 외부적인 환경과 생활조건도 같을 것이다. 지옥에서도 천국과 같은 음식과 옷이 제공되고 거주 환경도 천국과 지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모든 환경은 큰 차이 없이 주어지고 그다음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알고 있는 대로다.


천국과 지옥의 숟가락은 아주 길어서 밥을 떠먹기가 힘든데, 지옥에서는 혼자 그 긴 숟가락을 들고 자기 음식을 떠먹으려고 하고, 천국에서는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 혹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떠먹여주려고 하는 곳이다. 지옥이나 천국이나 같은 음식이 놓여 있지만, 지옥에서는 자기 입에만 음식을 넣으려고 해서 오히려 아무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천국에서는 똑같은 음식을 자기 입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에 먼저 넣어줌으로써 나도 배불리 먹는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단 하나의 차이는 태도의 차이일지 모른다.

참선 중인 승려. 미얀마 국민들도 매일같이 사원을 찾아 기원한다.

참선 중인 승려. 미얀마 국민들도 매일같이 사원을 찾아 기원한다.


국가가 개인을 보살피는 것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돕는 것
이 속에 천국이 있지 않을까

존재의 태도에 따라 우리는 이미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믿는 신앙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찾는 종교의 성지이자 종교의 박물관 같은 곳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모든 종파가 망라되어 있다. 라틴 전례를 따르는 로마가톨릭교회 외에도 이곳은 교회의 예법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교회로 나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전례에 속하는 콥트교회, 아르메니아 전례를 따르는 아르메니아교회, 안티오키아 전례를 따르는 시로 마로니타교회, 비잔틴 전례를 따르는 그리스정교회 및 러시아정교회, 칼데아 전례를 따르는 이라크교회가 있다. 이들 교회는 미사 전례에 각기 다른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신앙을 드러내는 예배의 방식과 믿음의 내용도 약간씩 다르지만, 모두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교회이다.


서울 시내 거리를 걷다보면 간혹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푯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수많은 종교가 내세관을 가지고 있지만 천국과 지옥은 죽음 다음의 세계에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가는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며 인간은 이미 이곳에서 지금의 현실로도 충분히 천국이나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경험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의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가 스스로 ‘헬조선’이라고 말했던 배경에는 각자도생의 현실이 그 바탕에 있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각 나라가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식을 바라보며, 국가나 사회가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돌봐준다는 그 느낌이 어떤 태도에서 비롯되는지,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떤 태도가 한 사회를 지옥 같은 상황으로 만드는지 경험하고 있다. 해외 곳곳에서 교민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고 우리 땅에 도착하면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며 국민들은 해외로부터 새로운 감염원이 생기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를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한다. 여기에서 나는 긴 숟가락으로 앞에 앉은 이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천국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 안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를 돕는 모습을 통해 선명해지고, 도움을 받은 나라가 또 다른 나라를 돕는 상황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하는 이유다.


재난의 상황이 길어지고, 얼마나 더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빠르게 받아들이고 현재의 상황에 최선의 마음으로 적응하려는 성숙한 의식 하나하나가 모여 바이러스를 이기는 새로운 치유력이 되고 있다. 질병의 대유행 속에서도 차분하고 질서 있게 치러낸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고난 속에서 더욱 힘을 합치고 강해지는 것이 본래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 경이로운 사회의 중심에서 우리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서있다.

‘일 파라디소 델라 코레아. Il Paradiso della Corea’

‘천국 한국’이 되기 위해서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 한동일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 2020]코로나의 시간…현실의 천국과 지옥 가르는 것은 인간 존재의 태도다
한국인 최초·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한 라틴어 강의는 타 학교생 및 외부인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래도 꿈꿀 권리> <라틴어 수업> <법으로 읽는 유럽사> <로마법 수업>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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