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파문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재임 시 부적절한 일이 있었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대법원이나 하급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고 부인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파문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재임 시 부적절한 일이 있었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대법원이나 하급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고 부인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권 때 주요한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거래하려고 했던 문건들이 법원의 자체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민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사법행정체제 등 법원 개혁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법농단에 대한 법원 안팎의 비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악마가 고해실 안에 있으면 그때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파당의 이익에 골몰하는 정당들을 비판하는 드골의 발언은 반세기를 지나 우리 법원을 관통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5월25일 발표한 제3차 조사결과보고서는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도 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법원을 악마의 권력 놀이터로 전락시킨 사법농단의 극단을 보여준다. 저 권위주의 시대, 정치권력의 압박에 굴복해야 했던 사법의 어두운 과거사를 깨치기는커녕 사법이 스스로 권력기관이 되어 법과 정의를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이번에 밝혀진 사법농단은 법원의 독립에 터잡은 민주적 기본질서 그 자체를 타격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법행정 조직인 법원행정처를 장악하며 사법권력의 수장으로 등극한다. 그리고 영혼 없는 사법관료로 타락해버린 일부 법관들을 손발 삼아 수시로 일선 법관들의 성향이나 관계망 심지어 그들이 진행하는 재판의 상황까지도 사찰하고 통제하며, 하나하나 독립되어야 할 전국의 법원, 법관들을 자신의 강고한 영향권 안으로 몰아넣고자 하였다. 게다가 더 강력한 권력인 청와대의 도움이 필요했는지 국민들의 생계와 운명이 달린 재판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거래하며 정권의 ‘입안의 혀’처럼 처신하고자 하였다.

고해실의 악마였나

물론, 이 사태는 양승태 개인의 비리 혹은 그 사단이 흐려놓은 흙탕물로만 치환될 수 없다. 그 배경에는 승진에 목을 매며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인사권자만 바라보는 우리 법관과 사법체계의 한계가 존재한다. 더 크게는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그동안의 민주화의 성과들을 일거에 되돌리기 위해 법원을 또 다른 행정부서인 양 오·남용하며 정치사법, 계급사법을 양산하게 만들었던 지난 정권들의 수구적인 행태들도 자리한다. 우리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와 그것을 악용하는 정치환경 그리고 여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욕망을 극단화시킨 전직 대법원장의 탐욕이 결합된 것이 지금의 사법농단 사태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보고서에 담긴 사실들은 청산해야 할 또 다른 ‘과거사’가 된다. 과거 적나라한 폭력에 의존하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민주화와 함께 법치라는 형식적이고 합리적인 통치술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법은 수구 기득권 집단들이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변종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의 긴급조치는 이미 위헌임이 선언되었지만 그것을 선포한 박정희의 행위는 양승태의 대법원에서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성차별과 고용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케이티엑스(KTX) 승무원들의 노력은 하급심의 승소 판결을 뒤엎는 대법원의 법 왜곡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받은 급여를 되갚아야 하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까지도 겪어야 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선언하고, 통상임금에 신의칙을 적용하는 파행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재판이나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원들을 내치기 위한 공작과 함께 민주화의 성과를 일거에 되돌려버리는 폭력 그 자체였다. 과거 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나 공안경찰이 저지르던 행태들이 그 형식만 재판으로 바뀐 채 온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조사단의 보고서는 의외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설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보고서에는 “주어가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박병대·고영한·차한성으로 이어지는 전 법원행정처장들도 이 보고서에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철저히 은폐·엄폐되어 세간의 눈을 피한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뿐이다. 그래서 이 엄중한 사법농단의 사태가 임종헌 차장의 개인적 일탈행위 내지는 직권남용에서 비롯한 것 같은 착시현상을 만들어낸다. 실질적으로 법원행정처의 운영을 주도해온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은 이런 착각의 뒤편에서 강고한 보신의 방벽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이기를 모면한 사람들은 또 있다. 특별조사단의 조사 대상이 되었던 법원행정처 심의관, 부장판사 등 수십명의 법관은 이런저런 특수문자로 이름이 가려진 채 단순 하수인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들이 작성한 문건들은 사실상 동료 법관들에 대한 사찰보고서이거나 혹은 재판을 정치의 제물로 삼는 기획서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이들을 단순히 문서나 작성하는 인간기계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중립적이고 독립된 법관에게 요구되는 윤리의식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저항의 의무를 저버린 다른 공무원을 질책하는 판관이 한 일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일탈은 있었지만 범죄는 없었다’는 궤변

그러다 보니 이 보고서야말로 ‘위험한’ 문건이 됐다. 사법농단의 실태를 조사하고 그 원인을 찾아 발본색원해야 할 이 문건이 역으로 수많은 비행·일탈자들을 숨겨주고 면책시켜주는 증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보수언론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며 역공을 시도한 사례는 그 대표 격이다.

블랙리스트의 핵심은 특정인에게 낙인을 찍어 불법적으로 사찰함에 있음에도, 이 보고서는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사찰행위들이 있었지만 “조직적, 체계적으로 인사상의 불이익 처분을 부과”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사법농단을 한 사람들이 숨을 수 있는 방패막이 논리를 덧붙임으로써 역공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실제 인사상 불이익 처분도 공식적인 인사발령만 중심으로 조사했을 뿐, 정작 악마가 숨어들기 쉬운 근무평정의 과정이나 선발의 과정에 대한 조사는 하지도 않은 채 그런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비행과 일탈은 있었지만 범죄는 없었다’는 보고서의 결론은 그래서 가능해진다. 사찰도 있었고 재판거래도 있었지만 그것이 법관의 인사나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실패한 기획 혹은 단순한 검토용 자료에 불과하다는 취지가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너무도 헛된 생략이다. 양승태 체제는 세간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이라 불렸다. 그 절대권력이 이런 미수 혹은 실패한 기획 위에서 구축되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물론 특별조사단은 강제수사권이 없어 조사 대상자가 협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와 관련해 어제 기자회견에서 “(조사 받으러) 내가 가야 합니까?”라며 조사에 불응한 것을 당연시했으며, 일탈 행위들을 임종헌 전 차장에게 미루며 발뺌을 했다. 따라서 법원이 제대로 하려면 이런 조사의 한계를 고백하면서 한 단계 나아간 조사 내지는 수사를 촉구하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칫 모든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가 된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순간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더욱 확대되고 좀더 강력한 조사 혹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모든 국민의 차가운 시선과 그 앞에서 당황하는 수많은 법관들의 분노는 사법농단을 일삼은 양승태와 그 일행을 향한 것인 동시에, 일탈·비행자에 대한 감싸기가 되고 만 이 보고서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안으로 굽은 법원 조사보고서
임종헌 차장에게만 책임 넘긴 채
원장·행정처장 역할 못 밝혀
심의관 등 단순 하수인 취급
농단 책임자들에게 면죄부 줘

사법 전횡 진상파악 없이는
개혁안도 사상누각 불과
검찰 수사 탐탁지 않아도
강제수사 외에는 방법 없어
상설특검 활용 검토할 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법원행정체제에 대한 근원적인 개혁을 약속한 것은 그나마 의미있는 조처라 할 수 있다. 실제 이 사태의 파장은 엄청나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팽배해 있는 사법 불신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불신이 개개의 법관과 개개의 재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그동안 어렵게 구축한 우리 사회의 법치가 한꺼번에 무너져버릴 수 있는 임계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담화는 이런 불안에 대한 처방이다. 법원행정처를 좀더 작은 기구로 만들고 탈법관화하며 사법행정과 관련한 의사결정 또한 더욱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이나 3천명이 넘는 전국의 법관을 하나의 서열관계 속에 줄세우고 승진에 목매게끔 만드는 법관 인사제도를 보다 수평적인 것으로 바꾸겠다는 제안은 만시지탄이지만 나름 적실성 있게 다가온다.

문제는 이런 개혁안도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사법농단 혹은 재판거래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어떤 재판 거래를 하였으며, 그 결과는 어떤 경로와 어떤 과정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법원행정처는 어떤 기준과 과정을 통해 인사권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지, 법관들은 왜 법원행정처의 하수인이 되어 위법한 명령에 하등의 대꾸도 없이 굴종하였는지, 그리고 왜 전국의 법관들은 이런 불법 앞에서 그렇게도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등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은 지금껏 하나도 풀리지 못했다. 게다가 그 중심을 차지하던 양 전 대법원장은 그 보고서의 내용조차도 부인하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무응답의 상태에서 나오는 개혁안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사상누각이 되기 십상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혁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 또한 여기에 있다. 진단이 없는 처방인 것이다.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건배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포도주잔을 부딪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건배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포도주잔을 부딪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법관 출신 특검 어떤가

그래서 가장 긴요한 것은 개혁 방안도, 대법원장의 담화도 아니라 양승태를 비롯한 전직 고위법관들에 대한 강제 수사를 요구하는 대법원장의 고발장이다. 제3차 특별조사단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고서가 누락한 사법농단의 실체를 드러내어 온당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 그리고 이를 계기로 우리의 법원과 법관들이 그나마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과제인 것이다. 물론 사법의 권위와 독립 보장의 필요성을 고려한다면 검찰의 수사가 그리 탐탁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차례에 걸친 법원의 자체조사에도 의혹이 커져만 가는 현실에서 우리의 사법체계를 살리고 법치를 복원시키는 길은 강제수사에 의한 진실규명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국회의 국정조사와 탄핵소추는 이론상 최선의 대안이지만 현재의 국회로서는 기대난망일 듯하다. 검찰과의 관계 때문에 정 내키지 않으면 기존의 상설특검법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설특검은 법무부 장관의 제의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어 국회를 우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특검을 법관 출신의 변호사로 임명하면 검찰의 부담이나 법원의 거리낌 모두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수사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수사할 것인가라는 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해실에 자리한 악마의 해악은 고해하는 사람을 우롱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선악의 기준을 뒤흔들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 사법의 독립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하지만 이 사태에서 사유화되어버린 사법권력은 사법의 독립을 훼손하고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기에 이 사태는 법원의 영역을 넘어선다. 대법원장은 더 이상 조직의 안정이니 내부의 의견수렴이니 하면서 좌고우면하며 주춤거릴 일이 아니다. 시급을 다투어 고해실에 숨어든 악마들을 솎아내야 할 때인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