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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아직 못 푼 빈곤의 숙제]생계급여 가구 43% “월세 내려고 식비 쥐어짜”…지원금 현실화 필요

행복 한 삶 2019. 2. 21. 06:59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아직 못 푼 빈곤의 숙제]생계급여 가구 43% “월세 내려고 식비 쥐어짜”…지원금 현실화 필요

② 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

<b>곰팡이 가득 핀 ‘월세 10만원’ 반지하방</b> 최부현씨(가명)가 주거급여를 받아 마련한 반지하방 벽면에 곰팡이가 심하게 피어 있다. 최씨는 “냄새에 곰팡이까지 있어 방에서 숨을 쉬기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곰팡이 가득 핀 ‘월세 10만원’ 반지하방 최부현씨(가명)가 주거급여를 받아 마련한 반지하방 벽면에 곰팡이가 심하게 피어 있다. 최씨는 “냄새에 곰팡이까지 있어 방에서 숨을 쉬기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빈곤층 지원금 제자리걸음 

물가·전셋값 인상률 밑도는 
생계·주거급여로 적자 허덕
“아파도 돈 쓸까봐 외출 안 해”
 

한국에서 가난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책임이었다. 조금이라도 일할 능력이 있는 이들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다. 국가는 이런 국민들의 노력에 기대 가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는 한국에서 빈곤층의 정의를 바꿔놨다. ‘일해서 먹고살라’는 얘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거리에 넘쳐났고, 이는 빈곤을 대하는 국가의 새로운 자세를 요구했다. 시민사회의 요구로 1999년 태동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시작점이 됐다. 국가가 현금을 지원하는 빈곤층이 전 연령대로 늘어났고, 노동능력이 있는 청·장년 빈곤층들도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제도 시행 초기 54만명이던 기초생활수급자는 2001년 141만명까지 늘어났다.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금액도 늘었다. 정부는 1999년 최저생계비를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급여 수준을 정했다. 빈곤층의 생활 수준을 최저생계비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였다. 제도 시행 전 4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최대 47만6000원이었으나,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선 84만1000원가량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생계급여(생활비)로 최대 131만9000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올해 시행 20주년을 맞았다. 세월이 흐르며 제도가 다듬어졌지만,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진 상태다. 특히 학계에선 “소득 상승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에게 지급되는 급여가 충분히 오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급자들의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소득환산제’가 엄격해 안 그래도 부족한 급여액을 줄인다는 비판도 있다. ‘성년’이 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아직 못 푼 빈곤의 숙제]생계급여 가구 43% “월세 내려고 식비 쥐어짜”…지원금 현실화 필요

 

■ ‘밑바닥 벗어나기 힘든’ 생계급여 

“‘수급자들은 중산층보다 당연히 못살게끔 해놓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당연히 못살아야 한다’는 단어가 마음에 꽂혔죠. 한평생 밑바닥 인생만 살 수밖에 없는 건지 막막했습니다.”(40대 남성 기초생활수급자 ㄱ씨) 


 

시민사회단체와 수급권자들의 모임인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과 김준희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연구원은 수급자 30가구가 2개월 동안 작성한 가계부를 분석해 그 결과를 지난해 말 발표했다. 연구진은 당시 수급자들의 주 수입원인 생계급여와 주거급여(임대료 지원금)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지 살펴봤다. 결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였다. 조사대상 30가구 중 20가구가 적자를 보고 있었다. 적자액은 평균 17만3470원에 달했다. 

특히 주거급여 부족은 수급자들은 물론, 정부의 연구용역에서도 인정한 문제다. 현재 주거급여는 서울에서 혼자 사는 이들에게 최대 21만원, 4인 가구라면 33만원까지 지원한다. 서울에서 이 정도의 월세에 식구 수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성북구와 강북구, 중랑구, 관악구 등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100만~300만원가량의 보증금이 있어야 하며 집에 따라 추가 관리비도 필요하다. 공동행동이 조사한 30가구 중 13가구는 월세가 주거급여보다 높아 생계급여 등으로 돈을 더 부담해야 했다.


 

자금을 확보해도 정보가 부족한 고령의 기초수급자들이 제한된 조건에서 살 만한 집을 찾는 것은 어렵다. 지난 14일 만난 최부현씨(68·가명)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보증금을 빌려 방을 찾아보던 지난해 7월, 성북구에서 월세가 10만원대인 집을 발견했다고 했다. 반지하방이긴 했지만 임대료가 주거급여의 절반 수준인 데다, 넓고 새로 도배가 돼 있어 그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두달 살아보니 싼 이유가 있었다. 싱크대에선 수시로 물이 역류했고, 비가 오자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곰팡이였다. 벽에 조금씩 곰팡이가 피는 듯싶더니, 어느새 벽 한쪽을 새카맣게 메워버린 것이다. 그는 “냄새에 곰팡이까지 있어 그런지 요즘엔 방에서 숨을 쉬기 힘들 때가 있다”며 “가끔은 자다가도 숨이 답답한데, 요즘엔 아령으로 가슴을 쳐 숨을 트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어 그는 이 방을 떠나기도 힘든 상황이다.


 

현재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식료품비, 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최대 51만원가량이다. 공동행동이 조사한 30가구 중 13가구는 돈 문제로 충분한 식료품을 구매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거급여로 다 해결하지 못한 월세를 내기 위해, 혹은 다른 생활비를 쓰기 위해 먹는 것을 줄였다. 이 중 3가구는 성장기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1일 평균 식비가 3000원대 안팎에 불과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거의 매일 삼각김밥, 우유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돈을 아끼려 스스로 사회적 관계를 끊기도 했다. 한 60대 남성 수급자는 “일단 밖에 나가면 하다못해 1000원이라도 쓸 수 있으니 일단 아끼겠다고 생각하면 밖에 나가지 않게 된다”며 “지금도 어깨 때문에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하는데, 최대한 아끼려고 바깥출입을 안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관계가 하나둘 끊어지면 위기 상황에서 급한 도움을 요청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노인들의 경우 고독사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아프거나 노동능력을 상실하면 더 큰 빈곤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아직 못 푼 빈곤의 숙제]생계급여 가구 43% “월세 내려고 식비 쥐어짜”…지원금 현실화 필요

■ 적정한 기초생활급여의 선결조건 

수급자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급여 산정의 근거가 되는 기준 중위소득이 먼저 올라야 한다. 그러나 과거 최저생계비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기준 중위소득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과거 최저생계비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 초기 급여를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정부가 빈곤층의 필요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최저생계비를 조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 변화에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2010년 전후 노동자 가구의 평균소득 증가율에 비해 최저생계비의 증가율은 미미했고, 최저생계비가 한 달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현실 반영 못하는 급여제도 

2015년 도입한 ‘기준 중위소득’ 
최저생계비 인상률보다 낮아
“엄격한 소득환산제도 손봐야”
 

이에 정부는 2015년부터 최저생계비 대신 가구소득의 중간값에 여러 경제지표를 반영해 만든 ‘기준 중위소득’을 활용했다. 하지만 처음 결정된 기준 중위소득은 수급자들의 기대보다 낮은 수준으로 출발했고, 이 때문에 생계급여도 충분히 인상되지 못했다. 기준 중위소득은 증가율도 낮았다. 2015년 7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전까지 최저생계비 평균 인상률은 3.9%였으나,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은 이보다도 낮은 2.3%에 불과했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는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예산을 조절하기 위해 빈곤층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기준 중위소득을 낮게 책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저소득층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소득환산제도 문제로 꼽힌다. 소득인정액에는 개인이 얻는 근로소득에 땅이나 집, 자동차 등의 재산을 일정한 산식에 따라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도 더해지게 된다. 재산평가액에서 ‘기본재산 공제액’과 부채를 뺀 뒤 일정비율을 곱해 산출한다. 문제는 한국의 집값은 나날이 뛰는데 기본재산 공제액은 2009년 이후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전셋집 등의 소득인정액이 올라 생계급여가 깎이거나, 아예 수급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2017년 3인 가구 최저주거기준 면적(36㎡) 이하의 전세보증금 평균금액이 1억2000만원이었다. 서울에서 이보다 낮은 8000만원의 전셋집에 살고 있어도 소득환산을 하면 23만원의 소득이 인정돼 그만큼의 생계급여를 덜 받게 된다. 한 푼이 중요한 서민들에겐 아쉬운 일이다. ‘미친 듯 뛰는 집값’이 저소득층에게는 이중의 압박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공동행동 측은 “현재 정부는 부유층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할 때는 과세표준을 깎아주고 보유 기간에 따라 추가로 공제해주는데, 가난한 이들이 거주 목적으로 가진 집에 엄격한 소득환산제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기본재산 공제액을 현실에 맞게 대폭 올려주거나, 주거용 재산이라면 소득으로 환산하는 재산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