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윤봉길 의거’ 87년 뒤…한·일 후손들의 ‘화해’
윤 의사 친조카 윤주씨와 일 상하이 총영사 증손녀 아야카의 만남 ‘지상중계’
윤 의사 상하이 폭탄 의거 담긴 무라이 총영사 유품 기증 인연
기증 당시 동봉된 편지 첫 공개

윤봉길 의사 친조카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왼쪽)과 1932년 윤 의사 ‘상하이 의거’ 당시 상하이 총영사였던 무라이 구라마쓰의 증손녀 무라이 아야카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내 윤 의사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BS 제공
지난달 28일 오후 EBS 일산사옥 3층 스튜디오로 긴 머리에 갈색 코트를 입은 여성이 들어섰다. 긴장한 듯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그의 곁으로 주름진 얼굴의 노신사가 다가갔다. 일면식이 있는 듯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당시 상하이 총영사로 부상을 입었던 무라이 구라마쓰의 증손녀 무라이 아야카(30)와 윤 의사 친조카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72)이었다. 이들은 같은 날 윤봉길기념관에서 먼저 인사를 나눴다.
두 번째 만남이어서일까. 어색함이 조금 덜한 듯 윤 부회장이 아야카를 향해 “오늘 고생이 많네요”라며 말을 건넸다. 통역을 통해 말을 전해 들은 아야카가 서툰 한국말로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가 일어난 지 꼭 87년 만에 이날 두 집안의 유족들이 공식적으로 만난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후손과 무라이 구라마쓰 상하이 총영사 후손의 만남이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임시정부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세트장 원탁 의자에 마주 앉았다. 이들의 대화는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의 대례복과 안경이 한국에 오게 된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야카가 온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어요.” 윤 부회장은 개인이 소장해오던 편지를 이날 처음 공개했다. 아야카의 아버지이자 구라마쓰의 손자 무라이 쓰토무가 1992년 매헌기념사업회에 안경을 기증하며 보낸 친필 편지였다. “대한민국 윤봉길의사기념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한 편지에서 쓰토무는 “인연이 닿아 천안 독립기념관에 의거 때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의 대례복을 기증했다. 서울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다는 걸 알고 당시 안경을 동봉한다”고 썼다.
쓰토무는 편지에서 동봉한 안경이 1932년 의거 당시 자신의 조부가 쓰던 물건이라고 밝혔다.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던 천장절(일왕의 생일 축하)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는 폭탄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편지에는 안경을 기증하는 이유도 담겼다. “매헌 각하의 행동은 귀국에서는 의거, 일본에서는 테러 행위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국민 인식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알고,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겨놓은 유물입니다.” 쓰토무는 한글로 된 문장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여러 가지 피해를 끼쳤습니다. 인수증을 부탁합니다. 서울의 기념관을 방문해도 괜찮습니까? 안내서 송달을 부탁합니다.”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편지를 소리내 읽은 아야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쓰토무는 18년 전 44세 때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아야카는 “기증 당시 세 살이었기 때문에 이런 물건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며 “한국에서 취재를 오고 해서 최근 며칠 동안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선조인 구라마쓰에 대해 공부를 했다. 유품을 기증한 아버지의 마음을 편지를 읽으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아버지가 나오셨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아버지가 하늘에서 열심히 당신 생각을 전해달라고 얘기하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아야카 “일본, 과거 인정하고 그대로 직시해야”
윤주씨 “한·일 좋은 관계 위해 함께 더 노력을”
한·일 후손들의 ‘화해’
아야카 아버지의 친필 기증 편지 “매헌 각하의 행동은 의거”
윤 부회장 “어려운 결정 하고…유품 기증해주신 것에 감사”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무라이 구라마쓰 상하이 총영사의 증손녀 무라이 아야카(왼쪽)가 윤봉길 의사 친조카인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과 윤 의사의 친필 문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BS 제공
“쓰토무가 후손으로서 어려운 결정을 하고 조상의 유품을 우리에게 기증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합니다. 백부(윤봉길 의사)를 존경하고 있다는 의미가 친필편지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말을 마친 윤 부회장은 아야카를 향해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윤 부회장의 행동에 놀란 아야카 역시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역사와 세대를 초월한 두 사람의 만남이 가지는 의미를 실감케 하는 순간이었다.
아야카는 이날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윤봉길기념관을 찾아 증조부의 유품, 윤 의사의 일대기를 둘러봤다. 그는 “독립기념관에서 초등학생들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 전 모습을 따라하며 사진을 찍는 걸 봤다”며 “그 사진만 봤을 땐 강한 의지를 가진 영웅적인 모습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방문한 윤봉길기념관에서는 윤봉길의 문학적이고 교육자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윤 의사가 한국 국민, 한국 어린이들에게 존경받는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역사 문제를 두고 한·일 정부 간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윤 부회장은 “윤 의사 의거와 관련한 일본인 후손과의 교류는 꾸준히 있었다”며 “윤봉길기념관 안내서를 받고 쓰토무가 기념관을 비공개로 찾은 적이 있고, 2003년엔 시게미쓰 마모루의 친손자가 윤 의사 기념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일본제국의 마지막 외무대신으로, 윤 의사 상하이 의거 당시 주중 공사였던 시게미쓰는 폭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증조부의 옷 무라이 아야카가 지난달 28일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아 증조부인 무라이 구라마쓰가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당시 입었던 대례복을 살펴보고 있다. EBS 제공
이날 대화는 후손들의 약속과 다짐으로 끝이 났다. 아야카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일은 사실로 남겨둬야 한다”며 “일본의 입장에서 바꿔서도 안된다. 일본은 과거의 일을 인정하고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한·일 간에 민간의 교류는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몰랐다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내가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윤 부회장 역시 “한·일 양국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오늘 만남을 기회로 더 노력을 같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3세이던 윤봉길 의사가 망명 중 중국 칭다오에서 찍은 사진과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가 윤 의사 의거 뒤 부상을 입고 업혀 가는 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작별 인사를 나눴다.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천장절 행사에 참석한 무라이 구라마쓰가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부하의 등에 업혀 가고 있다. EBS 제공
이날 두 사람의 대담 자리에는 배우 이순재씨가 진행자로 나섰고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김 이사장은 쓰토무의 친필편지와 두 유품에는 단순한 기증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편지에 쓰인 의거라는 말은 정의로운 거사라는 뜻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라며 “‘장래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는 부분도 눈에 띄는데, 기증 행위를 통해 한·일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되면 좋겠다는 역사의식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관계가 경색된 원인의 대부분이 역사적인 문제 때문”이라며 “실타래처럼 꼬인 역사는 일시에 풀 수 없고 한 가닥씩 풀어나가야 한다. 무라이 구라마쓰의 대례복과 안경은 양국 국민이 앞날을 위해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순재씨는 “윤 의사의 후손과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의 후손이 만나 과거 역사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는 화해의 장이 됐다”며 “마찬가지로 한·일관계가 적대적 갈등관계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쓰고 있던 안경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 전시 중인 무라이 구라마쓰의 안경. EBS 제공
이번 만남은 EBS 1TV <다큐프라임> 10부작 ‘역사의 빛 청년’ 제작진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허성호·이승주 PD 등 제작진은 쓰토무의 편지에 적힌 주소와 이름을 단서로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의 후손을 찾아나섰고, 오랜 추적 끝에 지난 3월16일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아야카를 만났다. 허 PD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의 역사가 증오의 역사에서 화해의 역사로 나아가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 의사와 무라이 구라마쓰 총영사 후손의 만남은 오는 8일 방송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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