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사♡회┛

[공감세상] 합법적인 불평등 / 이라영

행복 한 삶 2019. 8. 30. 18:54

[공감세상] 합법적인 불평등 / 이라영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7514.html?_fr=sr1#csidx9f7de140761cae585a2e3f0126e8f50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한 민주당 의원은 “누구나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며 “보편적 기회”라고 했다. 어쩌면 그가 아는 세계에서는 ‘보편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딱히 불법적 요소도 없으며 입시 제도를 잘 활용했을 뿐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법은 최대치의 도덕으로 여겨진다.

사법개혁의 상징이라는 조 후보자가 내놓은 정책안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그가 왜 개혁의 상징인지 의아할 정도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가장 개혁적으로 바라볼 면이 있다면, 그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담론화되는 현상이다. 이 사안은 조 후보자를 통해 드러난 이 사회의 ‘합법적인 불평등’ 시스템을 점검하게 만든다.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었다지만 특목고의 전문직 학부형 인턴십은 의미심장하다. 조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일 때는 아버지가 유명인이 아니었기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 후보자가 유명하지 않던 시절이라 오히려 더욱 문제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한 개인이 유명하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어떤 계층에서 공유하는 관행이라는 뜻이다. 특권층끼리 비공식적으로 자식 입시를 도와주는 구조다.

부모 재산이 50억원이 넘는데도 낙제를 하면 격려 차원의 장학금을 주는 교수, 성실히 2주간 인턴십에 참여하면 논문의 제1저자로 만들어주는 교수는 모두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을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 불법이 아닌 특혜를 공유하며 계층의 장벽을 쌓아 올리는 데 이바지한다. 장관 임명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가 이 ‘순수한’ 특별 공동체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에서는 폭염을 견디며 노동하던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졌다. 대학 내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작업 수칙을 다 지킨 노동자도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는다. 정규직의 죽음은 12점 감점이고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4점 감점인 공기업의 경영평가 시스템이 하청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비정규직의 ‘목숨값’은 정규직의 3분의 1이다. 끔찍하고 충격적인 현실이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세습하기 위해 ‘불법은 아닌 관행’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 ‘불법은 아닌 목숨값’의 불공정함은 얼마나 이해할지 의문이다.

한쪽에 부모의 학력과 자본을 세습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위험천만한 실습현장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논문 쓰고 학회에 참석하는 인턴십을 하며 ‘스펙’을 늘리는 특목고 학생들과 노동 현장으로 실습을 나가 산재 피해자가 되는 특성화고 학생들 사이에 놓인 인생의 기회는 과연 평등한가. 이 기회의 차이가 정말 개인 노력의 차이인가. 특성화고에는 특목고보다 저소득층이 10배 정도 많다. 특성화고와 특목고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살면서 점점 더 만날 일이 없어진다. 저소득층은 상위 계층이 얼마나 특혜를 누리는지 상상하기 힘들고, 상위 계층은 저소득층이 얼마나 불공정한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주로 상대적 특혜를 누린 이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명문대’라 불리는 몇몇 대학에서 벌어진 집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 주상복합 아파트는 같은 건물에서 임대 세대와 자가 세대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분리했다. 서로 다른 통로를 사용하여 마주치지 않도록 설계했다. 임대 세대는 비상시 옥상으로 갈 수 없는 구조다. 위기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적다. 이 건물 구조는 현재 한국 사회를 도식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예다.

죽음과 세습의 시스템은 이렇게 굴러간다. 불법은 아니다. 다만 합법적인 신분사회다. 이 합법적인 불평등 시스템이 더 무섭다. 나의 특권도 너의 도태도 모두 공정한 노력의 결과일 뿐 불평등의 증거가 아니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회의 ‘진보’를 고민한다면 ‘합법적 특혜’를 옹호할 게 아니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