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날’]3월21일 “헌법소원 제출은 군인의 본분을 망각”···날카로운 ‘불온서적’의 추억
옛날 사진을 들여다 볼 때면 한번씩 놀라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아니, 이때는 뭐가 이렇게 촌스러웠지?’ 혹은, ‘와 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 전자가 시간의 간격에서 나온 차이 때문이라면, 후자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동일성에서 비롯한다. 대개 더 놀라운 쪽은 전자다.
내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2008년과 그 이후의 몇 년이 그런 옛날 사진이다. 가슴에 콕 들어박혀 한 장의 스냅샷으로 남은 기억.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군대를 가기 전이었다. 지금도 고등학생은 ‘대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변에서 주입받는 존재 아닌가. 어린 시절의 나 역시 그랬다. 대학생활은 처음으로 내가 세상을 처음 제눈으로 보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작점이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두 개의 흉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명박산성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불온서적이었다. 저항적인 언론인을 탄압하는 강경책이나 KBS에 자기 홍보 시간을 만드는 문화통치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 피부에 와닿았던 사건은 저 둘이었다. 명박산성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던 MB가 쌓아올린 것이었다. 광우병 보도에 분노한 국민이 대대적으로 저항하자 그는 경찰을 시켜 광화문 광장에 차벽을 쳤다. 그 벽을 오르려던 꽤 많은 이가 벽 위에 있던 경찰의 방패에 맞아서 떨어졌다. 피 흘리던 노인과 경찰에 쫓겨 도망치던 임산부들의 모습은 내 마음까지 강하게 두드렸다. 잘못 사용되는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산성이 국민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몸을 쳐낸 물리적 장벽이었다면 불온서적은 심리적 장벽이었다. 나는 2009년 4월에 입대했는데, 6월 초 자대에 배치됨과 동시에 불온서적의 존재를 알았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은 특성상 아무 물건이나 가져갈 수 없다. 어떤 물건이건 병영에 들여오려면 입국심사처럼 헌병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불온서적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모로 봐도 테러의 수단일 수 없는 종이뭉치였지만 특정 종류의 책은 입국이 거부됐다. '장병의 건전한 생각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안그래도 MB 정부의 태도에 삐딱선을 타고 있던 나다. 그런 방식의 통제가 얼마나 정당한지 나는 의문이었다. 비판하는 이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의회 내외에서 토론해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게 정부와 여당의 역할이라고 나는 배웠다. 일개 병사가 글 몇 줄 읽는다고 무너져버릴 정권이라면 그 정권,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 게다가 통제는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불온서적 23권의 목록엔 <삼성 공화국의 게릴라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면서 군대 내 서점에서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판매했다. 나 몰래 관물함을 털어간 기무사의 행동도 황당했다. 그들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뺏어가면서도, 바로 옆자리에 꽂힌 마르크스의 <자본>은 들고 가지 않았다.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영어 원서라서 내버려 뒀던 것일까.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그때처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검열이 자행되던 시대, 선배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글을 읽고 써왔을지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교육학에서는 어린 시절 겪은 일이 나이가 들어서도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조금씩 리버럴리스트가 됐다.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2019년 3월 18일, 21일자 '오래 전 이날'을 쓰라며 모바일팀 선배로부터 과제를 받았다. '오래 전 이날'은 뉴스가 나가는 날과 같은 일자의 10년, 20년, 30년 등 10년 단위 과거 신문보도를 지금의 시점에서 조명하고 재서술하는 코너다. 1989년의 신문은 한자로 가득했고 1999년 신문은 일요일이었던 관계로 발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득불 2009년 신문을 화면에 띄웠다. 운명처럼 '불온서적'이란 글자가 눈에 박혔다. 국방부가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들을 비롯, 특수사관 후보생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뭐 이런 일이?'라며 나의 어린 동기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들 곁에서 나도, 별 촌스러운 일도 다 있었노라며 미소를 지었다. 2008년의 광장도 그랬다. 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이고 경찰에게 소리지르던 2016년의 광장에서 나는 경찰에 쫓겨 기타와 드럼을 들고 바쁘게 뛰었던 과거를 생각했다. 오늘의 공화국은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그러면서 문득,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 본다. '혼이 비정상'이라며 과거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역성냈던 그 사람.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도에 찬동했던 이들과 저자 목록에 올라갔던 이름들. 그리고 마치 그것이 논쟁거리나 되는 것처럼 기사화했던 몇몇 언론. 오늘은 과거로부터 정말 멀리 왔는가. 시간이 가져온 차이를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깜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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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3월 20일에 작성한 기사링크.
http://h2.khan.co.kr/201903210010001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08년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 목록에는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소설가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전자는 출판계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고, 후자는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가 선정한 책이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알라딘 갈무리
■2009년 3월21일 국방부, 법무관 등 ‘군기잡기’…‘불온서적파문’에 훈련강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마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불편하고, 자칫 감정이 상하기도 하죠. ‘안 보고 살면 그만’이라며 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세상일이 또 그렇게 흘러가질 않습니다. 함께 처리할 과제라도 있으면, 설득을 하든 타협을 하든 귀찮은 절차를 감내해야 하지요.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권력자들은 책 읽는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감정적 호오를 넘어 금서를 지정하기까지 했지요. 책은 독자가 저자와 만나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기초입니다. 이를 뒤집으면, 책만 잘 통제해도 생각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요. 제자백가의 사상이 담긴 책을 모두 불태운 진시황의 분서갱유뿐만 아니라, 독일의 나치, 소련의 스탈린까지 금서의 시행은 동서고금을 막론합니다.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도 금서가 등장했습니다. 기사엔 이명박 정부 시기 국방부가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들을 ‘군기잡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당시 국방부는 “육군의 법무·군종·의무 등 10개 병과의 특수사관 후보생 교육을 육군훈련소와 부사관학교에서 신병·부사관들과 함께 실시하도록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고 밝혔습니다. 직전까지 특수사관 후보생들은 장교로서 별개로 훈련을 받았는데, 이제 부사관이나 병사들과 섞여서 훈련을 받게 된 것입니다.

2009년 3월 21일자 경향신문 9면
이렇게 변화한 계기가 뭘까요? 2008년 10월, 군 법무관 7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그해 7월 국방부는 국군기무사령관으로부터 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반정부, 반미 의식화 사업을 위해 현역 장병에게 ‘도서 보내기 운동’을 추진한다는 정보보고였는데요. 이에 국방부는 한총련이 보내려고 한 도서목록을 입수해 재분류한 후 총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습니다.
7인의 법무관이 낸 헌법소원은 바로 이 불온서적 지정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이들 법무관은 당시 “관련 규율과 지침은 ‘불온’이라는 개념을 어떠한 구체성도 없이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국방부는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내용이 담긴 도서는 앞으로 무수히 ‘불온’으로 지정하는 행위를 반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군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행복추구권,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불온서적이란 단어를 찾아봐도 ‘불온한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책’이란 정의만 나와있을 뿐, ‘무엇이 불온한 것인가’까지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 국방부가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라는 세 가지를 제시하긴 했지만 여전히 모호한 규정이었죠.

2008년 10월 24일자 경향신문 3면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법무관들이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헌법소원을 제출한 것은 군인의 본분을 망각한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훈련 내용의 결정은 국방부의 재량입니다. 문제는 그 결정의 맥락이죠. 상명하복이 군인의 본분이라고는 하지만, 헌법에 위배되는 상부의 결정까지 따라야 하는 걸까요? 이에 “군대가 헌법에 예외적인 집단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경향신문, 2008년 10월 24일 최강욱 변호사 인터뷰 “군 수뇌부가 군대의 수준을 너무 얕봤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국방부는 완고했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 3월엔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 중 한 명이었던 지영준씨가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을 냈다는 이유로 국방부에 의해 파면 처분을 받게 됩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 목록은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7월엔 지씨에게 내려진 강제전역 처분이 대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기도 했지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재판관 8명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불온서적 지정은 ‘책 읽을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성에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헌법소원 제기는 헌법에 의해 허용되는 권리행사일 뿐 군인의 복종 의무 위반이라 평가할 수 없다.”
권력은 종종 책 읽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헌법은 책 읽는 자유를 함부로 제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주체가 설령, 군인이라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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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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