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삼성전자 아시아 공장의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3개국 노동자 129명을 만났다.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인도 삼성 노이다 공장 앞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노이다/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관리자는 “전화를 받거나 쉬는 건 절대 안 되지만, 화장실은 가도 된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해도 할당량을 채우기 힘든 상황에서 마음 놓고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 날로 이월됐고, 결국 주말까지 일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공장을 ‘고함의 공포’로 기억했다. 인도 노이다 공장 견습공이었던 프라카시(가명·22)는 기억나는 한국말이 있느냐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빨리빨리”를 외쳤다. 잠시라도 작업 라인에서 물러나거나 앉으려고 하면 관리자들은 언성을 높여 “빨리 일하라”고 다그쳤다고 했다. 프라카시는 “입사 전에는 분명 2시간마다 휴식이 주어진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오전 10시10분에 ‘짜이’(인도식 밀크티) 마실 때 한 번 쉬고, 오후엔 거의 휴식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인도 청년 치트완(가명·21)에게 삼성은 꿈이었다. 하지만 막상 삼성 공장에서 일할 땐 꿈꿀 시간조차 없었다. 치트완은 삼성을 그만두고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기차로 9시간 걸리는 시골 마을 아누페드라에 살고 있다. 그는 “삼성에 대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델리까지 먼 거리를 달려와 취재에 응했다.
치트완은 2018년 8월부터 11월까지 인도 노이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보급형 갤럭시 휴대폰을 만드는 메인 라인에서 일했다. 어느 날 열이 나고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관리자를 찾아 “어제부터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오늘은 8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지인 관리자는 대뜸 “타깃(목표량)을 채우고 퇴근하든가, 그게 싫으면 당장 관두라”며 욕설을 섞어 다그쳤다.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보니, 1인당 생산 목표량 1600대를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작업명 ‘1200’이라 불렸던 갤럭시 휴대폰을 13초당 1대씩, 12시간 내내 조립해야 전광판은 꺼졌다. 그렇게 일하고도 ‘견습공’이란 이유로 그가 받았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가 마주했던 삼성 공장은 닳도록 일하다 병들어 나가거나 계약 해지로 잘려 나가는 곳이었다. 삼성은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다.
2017년까지 노이다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다 그만둔 아눕(가명·21)은 “삼성을 그만두고 다른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삼성처럼 많이 일하지도 혼나지도 않는다”며 “소니나 타타 자동차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삼성 공장의 노동 환경과 강도를 말해주니 ‘말도 안 된다’고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삼성전자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2018>을 통해 “직원 간의 괴롭힘”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인권정책 및 관리체계와 관련해 “우리는 ‘책임 있는 기업연합’(RBA·아르비에이) 회원사로서 아르비에이 행동 규범을 준수한다”고 덧붙였다. 아르비에이 행동 규범은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이나 학대, 체벌, 정신적 또는 육체적 강압, 폭언을 포함한 일체의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대우가 있어서는 안 되며 그러한 대우에 대한 위협도 일절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삼성의 공식 주장이 현실과 다르다는 증언을 아시아 곳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아눕(가명·21)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관리자에게 하루 1600~1700개에 이르는 휴대폰 조립을 할당받고, 전광판에 숫자가 줄어드는 박자에 맞춰 일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동안 단 하루의 휴가도 쓰지 않고 일했다. 관리자의 눈에 띄어 정규직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견습공 가운데 약 5%가량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잔업도 줄어들고, 각종 수당과 복지 혜택 등이 제공된다. 실수령액이 3배 가까이 높아진다. 관리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퇴사하고 나서야 그는 “파란 목줄을 걸고 출퇴근하는 ‘삼성맨’에 대한 열망이, 지속 불가능한 극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었던 청춘의 한때와 바꿔진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시 삼성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2013년 브라질에서 과도한 택트 타임 관리를 통해 초과근로를 강요한 혐의 등으로 브라질 노동 검찰로부터 2억5천만헤알(약 12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이후 삼성은 ‘초과근로 등 노동자의 뜻에 어긋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우리 돈 13억원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브라질 정부와 합의했다. 브라질 삼성 공장의 택트 타임은 일반 휴대폰의 경우 32.7초, 스마트폰은 2분이었는데, 베트남과 인도에서는 각각 13~14초와 1분 안팎으로 단축됐다. 노동의 권리가 미약한 아시아에서 삼성의 얼굴은 더욱 가혹해졌다.
베트남 박린 공장 주차장에 노동자들을 실어 나를 수십대의 통근 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박닌/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2017년 베트남 삼성전자 공장 노동실태 보고서를 작성했던 베트남 노동단체 연구원은 통근버스에 대해 “몇몇 글로벌 기업도 삼성을 따라 도입하기 시작한 독특한 시스템으로 출퇴근 버스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은 잔업을 빨리 끝내도 버스 시간에 맞춰 더 일하게 된다. 공장에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래야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다. 노동자를 시스템에 순응하게 하는 매우 악랄한 방법이자 노동자의 상상력을 박탈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기숙사는 24시간 감시받는 통제된 공간이다. 베트남 박닌 공장에서 만난 한 삼성 노동자는 “기숙사는 근무 시간대가 다른 교대 노동자들을 한방에 머물게 한다. 퇴근하고 돌아가면 누군가 쉬고 있으니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용 공간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24시간 작동한다. 베트남 노동단체 연구원은 “삼성이 왜 기숙사에 머물러야 하는 다른 지역 출신을 우선 채용하는지가 중요하다. 삼성 기숙사는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원 시간을 완전히 제어하는 ??큰 그림의 일부다. 주거를 회사에 의존하게 해 회사에 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노동자와 공장 주변 주민들은 삼성이 버스와 기숙사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원거리 지역 출신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삼성 공장 바로 앞에서 노동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노점을 운영하는 한 박닌 주민은 “삼성은 공장 근처에 사는 박닌 사람은 뽑지 않는다. 박닌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고기업의 최저임금 아시아 3개국 삼성전자 공장 노동자들은 자국의 최저임금에 못 미치거나 조금 웃도는 돈을 받고 모든 시간과 삶을 삼성에 바치고 있었다. 삼성은 병에 걸릴 확률도, 몸이 아플 확률도 적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을 짧게 쓰고 버린다. 인도 견습공의 경우 평균 월급이 14만1912원에 불과했다. 준숙련노동자 기준 월 최저임금 1만5400루피(약 26만2천원)에 한참 못 미친다.
삼성 공장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온 베트남의 듀엔과 인도의 모디는 각각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산다. 견습공 신분인 모디는 잔업 수당을 합쳐 한 달 9천루피(약 15만원)를 받는데 그 돈으론 침대 없는 방 월세도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동료 2명과 함께 월 5천루피의 월세를 나눠 낸다. 그가 출근하고 나면 그가 쭈그려 잠을 청했던 바닥에서 주야 맞교대를 끝내고 돌아온 동료가 잠을 잔다. 모디는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추슬러 출근할 때 종종 삼성 면접관이 물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면접관은 “아버지는 무얼 하시고, 가정 형편은 어떠냐”고 물었다. 모디는 자신이 가난했으니까, 더 절박하게 일할 테니까 뽑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도 노이다 공장 주변에 삼성전자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노이다/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azuri@hani.co.kr
삼성전자 한 해 매출은 243조7700억원, 영업이익은 58조8900억원(2018년 기준)에 이른다. 휴대폰 100조6800억원, 반도체 86조2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도 삼성 공장의 어떤 노동자는 “돈이 없어 저녁을 굶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한 노동 활동가는 “삼성이 만들어내고 있는 착취와 격차를 설명할 지구적 개념이 필요한 지경”이라고 했다. 삼성이 누리고 있는 전 지구적인 ‘돈의 권능’은 아시아 청년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영혼이 뭉쳐진 값이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김완 옥기원 이재연 기자 funnybone@hani.co.kr